파란만장한 삶 속 굳건한 신앙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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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님의 이야기
파란만장한 삶 속 굳건한 신앙의 증인

김명순 권사, 파란만장한 신앙 여정의 기록

김명순 권사님은 1944년에 태어나 올해 80대 중반의 연세이십니다. 권사님의 젊은 시절은 신앙생활과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심지어 교회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고, 기도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고 회고하십니다. 당시 권사님 가정에는 불교를 믿는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교회는 절대로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교적 배경 속에서, 권사님은 스스로 미신을 지키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불교 어른들의 영향 아래 교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사셨습니다. 권사님의 초기 삶은 청김면에서 시작되어 금막으로, 결혼 후 방전을 거쳐 현재의 흥구리 동네로 거처를 옮기는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동네의 전반적인 어려움 속에서, 권사님은 이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신앙 없는 삶을 살아가셨으며, 이는 훗날 찾아올 극적인 신앙 체험의 배경이 됩니다.




신앙의 문턱

권사님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신앙 없이 살아오셨으며,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교회를 처음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기도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신앙과는 무관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권사님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바로 절에 다녀오신 후였습니다. 당시 "귀신이 들렸다"고 여겨질 만큼 이상한 경험을 하셨다고 솔직하게 증언하십니다. 귀신이 자신을 따라오고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어 집안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권사님의 가족에게도 큰 걱정을 안겨주었고, 주변의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하십니다. 절에 다녀온 것이 귀신 들림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굳게 믿게 된 이 경험은 권사님의 삶을 신앙의 문턱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첫 교회 방문과 기적적인 치유

귀신 들림으로 인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권사님은 이를 고쳐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교회를 찾게 되셨습니다. 다행히 둘째 시누이가 교인이었으며, 그녀의 끈질긴 전도를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온 교인들이 권사님을 위해 애쓰며 기도했고, 심지어 천장이 울릴 정도로 기도 소리가 컸다고 회상하십니다. 그 시기에는 어린 자녀들도 있었기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온 지 며칠 만에, 특히 약 일주일간의 강도 높은 기도를 통해 권사님의 마음은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장로님들도 권사님을 위해 많이 기도해주셨다고 감사함을 표하십니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귀신 들림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시며, 이 경험은 권사님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큰 신앙적 체험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희생

교회에 처음 나간 후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사님은 한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의 심한 질투 때문이었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십니다. 처음에는 남편도 약 1년 정도는 교회를 잘 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사님의 교회 출석에 대한 질투가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권사님은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보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결국 남편과의 갈등을 피하고 가족의 화목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길을 택하셨고,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잠시 교회를 다시 나가보려 시도했으나, 결국 다시 발길을 끊으셨다고 회고하십니다. 이처럼 남편의 반대로 인해 권사님은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셨으며, 이는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건강 문제와 신앙으로의 복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잠시 신앙을 멈췄던 권사님께 약 70세가 되던 해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뇌출혈 또는 뇌경색을 겪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약 10일간의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다행히도 큰 후유증은 남지 않았지만, 이 일로 인해 말이 조금 어눌해지는 불편함을 겪게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 시기에, 둘째 아들이 권사님께 "교회 가면 좀 낫지 뭐가 그러냐"며 다시 교회에 나가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아들의 권유는 권사님이 다시 신앙의 길로 돌아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권사님은 흥구교회에 꾸준히 출석하기 시작하셨고, 현재까지 12년 동안 아무런 방해 없이 교회를 계속 다니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교회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에 권사님은 깊은 감사와 만족감을 표현하십니다.



흥구교회에 대한 애정과 바람

김명순 권사님은 현재 출석하고 있는 흥구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특히 현재 목사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며, 목사님이 성도들과 이웃에게 매우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십니다. 동네 주민들조차 목사님의 성실함과 인품을 인정하고 좋아한다고 덧붙이시며, 극찬하십니다. 흥구교회에는 권사님까지 포함하여 금막 지역에 약 10여 가구 정도만 출석하고 있어 교인 수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새벽 예배는 거의 나오지 않고, 권사님도 교회까지 목사님이 태워다 주어야 할 정도로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비록 교인 수는 적지만, 권사님은 흥구교회가 앞으로 성도들이 많이 생겨서 교회가 계속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깊은 바람을 가지고 계십니다. 전도를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고 하시며,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삶의 감사

권사님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신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하십니다. 특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에 가장 큰 복이자 감사함으로 여기십니다. "모든게 다 감사하지요. 우리는 하나님한테 다 감사해요. 우리 아들 건강하고도 감사하고."라고 말씀하시며 무한한 감사를 표하십니다. 지금도 유일하게 기도하는 제목은 막내 자녀의 건강이라고 하시며, 자녀들의 건강을 늘 기원하십니다.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기도는 직접적으로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 믿고 맡기는 태도를 보이십니다. "건강 주고 믿음도 달라"는 말을 늘 하신다고 언급하시며, 육체적인 건강과 영적인 믿음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믿음 후배들에게 흥구교회 성도들이 모두 건강하게 믿음을 잘 지키며 천국 갈 때까지 함께 잘 지내자는 메시지를 남기십니다. 권사님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직 건강과 믿음을 지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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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님의
인생 타임라인

1947-06-20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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