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피어난 삶의 이야기

  • 문덕채 집사님
    1934년 12월 05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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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가는 삶, 패랭이꽃처럼

패랭이꽃처럼, 세상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 황혼에는 더욱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지길 소망합니다. 영덕읍교회 문덕채 집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희생 속에 피어난 삶의 본보기

나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포항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우리 집안의 뿌리는 대구였습니다. 아버지는 서당 선생님으로, 어머니는 주막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지셨습니다. 집안 사정은 넉넉지 않았지만, 두 분은 저희 형제들이 굶지 않고 배울 수 있도록 많은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당시 우리가 살던 마을은 전쟁과 혼란의 여파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도우며 살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법과 사람들의 정을 배웠습니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부모님이 보여주신 희생과 헌신이 제 인생을 이끌어 준 가장 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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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한 꿈이 준 더 큰 배움의 자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는 공부와 운동 모두에서 나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체육을 좋아해서 학교 대표로 운동 경기에 나가곤 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께 칭찬을 많이 들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학생이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학업에서도 선두를 달렸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체육에 더욱 열정을 쏟아, 경북사대 체육과에 지원했고 합격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나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죠. 처음에는 낙심도 많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도 했습니다. 결국 군대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한 아쉬움은 오랫동안 제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군대에서 저는 운동 실력을 인정받아 배구 경기에 나섰고, 열정적으로 활동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학문의 길은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 시절을 통해서도 저는 삶의 열정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꿈은 잠시 접어야 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경험과 배움도 제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사람 속에서 배우고, 나눔으로 성장하다

군복무를 마친 후, 저는 농촌진흥원에 들어가 지도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농촌 지도사는 농민들을 돕고, 지역 사회에 필요한 교육과 기술을 전파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영해 지역에 발령받아 4년간 근무했는데, 농민들과 직접 만나며 소통하고 그들의 삶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이 컸습니다. 특히,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함께 배우고 성장했던 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저는 공화당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지역 정치에도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화당은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사무국장으로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경로잔치와 같은 지역 행사도 주도했습니다. 정치 활동은 저에게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줬지만, 때로는 정치의 복잡한 이면을 보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은 제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았던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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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만난 인연, 헌신으로 남은 축복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아내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농촌진흥원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내는 교사로 근무 중이었죠. 지역 행사나 축구 대회 같은 활동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자주 보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지만, 점점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며 깊은 대화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연애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제가 아내에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을까 고민도 많았지만, 아내는 그러한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결혼 후 우리는 힘을 합쳐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며 고난 속에서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가정을 위해 항상 헌신적이었고, 아이들에게도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지금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제게 가장 큰 축복이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그녀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믿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 위에서 가족과 함께 피어날 소망

저의 신앙 생활은 아내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내가 먼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저도 그녀를 따라 자연스럽게 신앙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믿음 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안과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내와 함께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나눴던 순간들은 지금도 제게 가장 소중한 기억입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로, 저는 더욱 신앙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를 통해 자녀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제 삶의 가장 큰 바람 중 하나는 자녀들과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리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식들의 믿음에 대해 더 잘 이끌어주지 못했던 것이 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가족들이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노후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남은 시간 동안 더 나은 삶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아내와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며, 패랭이꽃처럼 고난 속에서도 황혼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싶습니다. 신앙은 제 인생 후반부의 중심이 되었고, 가족과 함께 믿음을 나누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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