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길로 새롭게 빚어진 인생

  • 김연홍 권사님
    1944년 04월 02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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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처럼, 굳세게 피어나는 삶

길가에서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질갱이 꽃처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며 다시 일어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게 살아온 영덕읍교회 김연홍 권사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이름, 아버지의 사랑

저는 경북 안동의 구천동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 그 당시 마을은 대부분 초가집이었고, 집집마다 고요하게 시골 생활을 이어갔어.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자주 모여서 술을 마시곤 했어. 아버지께서도 술을 좋아하시던 분이라 술에 취하면 집안 분위기가 자주 어수선했지. 때로는 이웃들과 정치적인 문제로 다투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가정 환경이 참 어려웠다는 걸 느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제게 ‘연홍’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셨어. 그 덕분에 사람들에게 자주 칭찬도 받았지. 마을 사람들 중 글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아버지가 마을에서 몇 안 되는 글을 아는 분 중 한 분이었지.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출생신고나 이름 지어주는 일을 맡기도 했어.아버지는 저에게 기본적인 글을 가르쳐 주셨고, 덕분에 저는 초등학교 학습을 조금씩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저처럼 글을 배우는 아이는 마을에서 드물었고,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그 꿈을 이루기엔 너무 힘들었어. 어린 시절, 저는 많은 기대와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을 펼치기엔 환경이 너무 어려웠어. 가난과 아버지의 술 문제로 인한 가정의 불화 속에서 제 어린 시절은 흔들리고 불안정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가족을 돕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았어. 그 마음은 결국 제가 성장하면서 더 강해지게 만들었고, 나중에 제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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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시작, 따뜻한 손의 온기

어린 시절, 그 당시 학교에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 학비를 내지 못해서 교장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기도 했고, 결국 2학년이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었지. 그때의 창피함과 어려움은 어린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어. 하지만 그 시절에도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있었고,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후에는 미용학원을 다니며 작은 희망을 찾으려 했지. 그때 입었던 고무신과 긴 치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지. 그렇게 학교에 가지 못한 그 시절에도 중요한 순간이 있었어. 바로 교회에서 받은 따뜻한 사랑이었어. 우리 마을에서 교회는 꽤 멀었고, 교회에 가려면 길을 건너야 했어. 그때, 오정순 선생님이라는 분이 할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셨어. 겨울 크리스마스 때였어. 손이 너무 차가워지니까, 선생님이 어린 내 손을 꼭 잡고 따뜻하게 호호 불어주셨어. 그때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손도, 마음도 녹였어. 예배가 끝난 후, ‘돌아갑시다’라는 노래를 부르던 것도 기억나. 그때 대여섯 살쯤 되었던 것 같아. 정확히 몇 살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했었어. 그게 바로 나의 신앙의 시작이었어. 어린 시절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회에서 받은 사랑과 따뜻함은 마음 속 깊이 남아, 지금까지 신앙을 이끌어준 중요한 기억이 되었지.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성장하는 가정

결혼은 제게 중요한 결정이었어. 당시 내 삶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있었고, 그 상황에서 결혼을 마음먹은 이유는 "그래도 남들처럼 결혼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지. 결혼 후, 시댁은 큰 집안이었지만, 나와 남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어. 남편은 돈 문제를 겪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가정의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지. 집안은 자주 어수선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많았어. 내가 집안을 꾸려가야 했고, 남편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지. 그때마다 나는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애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았어. 힘든 시기였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고, 서로를 지지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어. 그 어려움 속에서 더 단단해진 마음이 결국 우리 가정을 지켜줄 수 있었어. 처음 몇 년은 정말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위한 마음이 더욱 강해졌고, 그 믿음이 저희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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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다시 회복한 나의 삶 : 간증

숙박업을 하던 시절이었어. 일이 정말 많았어,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입이 굳어버린 거야. 음식을 먹으려고 해도 입이 전혀 열리지 않더라고. 아무리 해봐도 안 돼서 병원에도 가봤는데, 거기서도 방법이 없다는 거야. 할 수 있는 거라곤 죽을 끓여서 빨대로 물과 죽을 삼키는 게 전부였어. 그렇게 열흘을 버텼지. 근데 체력은 점점 바닥나고,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이제 정말 끝인가 싶었어. 그때 문득 영주에 사는 친구가 생각났어. 그 친구가 치유의 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기억나더라고. 그래서 급히 전화를 했지. 다행히 친구가 심령 감찰하는 분 두 분을 데리고 와주셨어. 그분들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주셨는데, 나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어. 기도가 끝나고 나서 그분들과 함께 식당에 갔는데,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야. 밥을 먹으려고 나무젓가락을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밥을 한입 먹고 있었어! 처음엔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굳어 있던 입이 열렸다는 걸 깨달았어. 열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내가 밥을 먹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 정말 꿈만 같았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어. 그 순간 깨달았어. “아, 하나님이 나를 고쳐주셨구나. 내 삶을 이렇게 붙들어주시는구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더라고. 그리고 결심했지. 앞으로는 매일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자고.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돌봐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어. 그 사건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 그 뒤로도 삶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나는 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 지금도 그때의 기적 같은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살아계시고, 치유의 능력이 크신지 나누고 있어. 그때 내가 겪은 일이 누군가에게도 희망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정직과 신앙으로 이끈 가정의 믿음

나는 자녀들에게 항상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가르쳤지. 그 당시엔 신앙이 깊지 않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올바르게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늘 말했어.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들들을 서울로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했지. 덕분에 지금은 모두 잘 자라서 참 고맙고 감사해. 자녀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자라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야. 내가 겪은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교훈이었다고 생각해. 하나님께서는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셨고, 그 덕분에 후회 없이 살고 있어. 나는 신앙을 바탕으로 가족을 이끌며, 자녀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다고 믿어. 이제는 그 믿음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그들이 신앙 안에서 잘 살아가기를 기도하고 있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내 생애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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