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나의 버팀목, 하나님은 나의 길잡이

  • 김영숙 권사님
    1944년 01월 25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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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있어 더 아름다운, 내가 사랑하는 장미

장미가 예쁘게 가시가 있어서 더 좋은 영덕읍교회 김영숙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시골의 소박함 속에 사랑과 배움

나는 안동 송천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 그때 우리 마을은 정말 시골이었지. 언덕과 논밭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고, 자연 속에서 뛰어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곳이야. 특히 우리 집 근처 교회 옆에 있던 그네나무는 내 어린 날의 보물이었지. 친구들과 그네를 뛰며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교회에도 발걸음을 옮기게 됐어. 처음 교회에 갔을 때, 마음이 참 편안하고 좋았어. 하지만 우리 집안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에 혼자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했고, 그건 나에게 조금 힘든 일이었지. 우리 집은 당시의 마을에서는 조금 특별했어. 아버지가 글을 읽고 쓸 줄 아시는 분이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받으셨거든. 사람들이 편지를 읽어달라고 부탁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찾아오면 아버지는 늘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어.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술을 좋아하셨고, 그로 인해 어머니가 많은 고생을 하셨지. 어머니는 항상 농사일로 바쁘셨고,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셨어. 때로는 어머니가 속상해서 아버지와 다투시는 모습도 봤지만, 두 분은 나에게 세상에 대한 넓은 시야와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 부모님의 이런 모습들이 내 어린 시절의 밑거름이 되었고, 지금도 그 기억들이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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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안에 피어난 가정의 꽃

스물셋에 나는 결혼을 했어. 당시는 연애 결혼보다는 중매 결혼이 일반적이었고, 나도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와 결혼했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는 너무나 낯설고, 떨렸던 기억이 나. 그저 어른들이 좋다고 하시니 따라야 했던 시대였거든. 남편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 하지만 결혼 초에는 내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걱정을 많이 했어. 그래도 남편이 내 편이 되어주며 “이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한다”고 할 정도로 날 지켜줬지. 그 덕분에 우리는 가정을 꾸렸고, 아들과 딸, 사랑스러운 남매를 낳았어. 자녀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정직하고 착하게 자라주니 그게 큰 기쁨이었지. 특히 우리 아들은 학교를 다니며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했어. 지금도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행복하길 바라며 매일 기도하고 있어.


신앙으로 함께한 길, 삶의 버팀목

나는 18살에 처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어. 그때는 단순히 친구와 놀러 가는 기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교회에 들어서자 마음이 참 편안했지. 당시 우리 가족 중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래서 혼자 교회를 다니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어. 결혼 후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남편과 시댁은 내 신앙을 이해하지 못했지. 그 때문에 한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다시 신앙을 붙잡게 되었어.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어. 남편의 반대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지. 신앙은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자, 삶의 버팀목이었어. 특히 88년부터 시작한 새벽기도는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어. 매일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었고, 그 시간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남아 있어. 시간이 흐르며 남편도 변화하기 시작했어. 우리 며느리가 가정에 들어오면서 남편에게 교회를 다니자고 권유했고, 그 덕분에 남편도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인도하셨다는 걸 깊이 느껴. 처음엔 단순히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녔던 내 신앙이, 이제는 우리 가정 전체를 변화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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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는 믿음의 씨앗

나는 남매를 두고 키웠어. 딸 하나, 아들 하나. 우리 아이들은 정말 효도했지. 특히 아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결석 한 번 안 할 정도로 성실했어. 딸도 믿음 생활을 잘하며 자신의 가정을 소중히 가꾸고 있고. 나는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길 매일 기도해. 손주들도 착하게 자라길 바라고, 그들이 어디서든 바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해. 내 자녀와 손주들은 내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야.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 가장 큰 소망이지.


넘어지지 않는 믿음의 힘

삶이 늘 평탄할 수는 없더라고.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우리 집도 큰 어려움을 겪었지. 경제적인 어려움과 남편의 방황으로 가정은 힘든 시기를 보냈어. 그 와중에 나는 허리까지 다쳐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그때 교회 김주원 목사님이 서울까지 병문안을 와 주셨어. 그 먼 거리를 혼자 오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이던지, 눈물이 나더라고. 그 일이 있은 후로 신앙은 내게 더 큰 위로와 힘이 됐어.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주셨고, 그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어. 고난은 나를 흔들어 놓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 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걸 느꼈어.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고난을 통해 믿음이 더욱 단단해졌지. 이제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주 생각해.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물론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어. 내 소원은 가족 모두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 거야. 나는 이 세상에 잠시 소풍을 온 것뿐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날을 준비하며, 내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빛과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이야. 고난 속에서도 담대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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