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와서 흙으로, 그러나 흔적은 남는다

  • 김양회 장로님
    1950년 10월 10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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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지만, 그래도 살아냈다.

나는 194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어.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어. 6.25 전쟁 직후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배고픈 게 일상이었지. 그나마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밀가루 배급이 나오면서 좀 나아졌어.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 살았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20살 때부터 광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그냥 앞만 보고 살았지.

한 우물만 팠어, 그게 답이더라고.

처음부터 발파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20살 때 광산에서 일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서게 됐지. 석회석 광산에서 책임자로 일하다가, 일본 회사랑 대리점을 맺고 발파 장비를 들여오면서 본격적으로 이 업에 발을 들였어. 근데 기계를 팔아보니까 나랑 안 맞더라고. 그래서 직접 현장에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렇게 하다 보니까 평생 이 일을 하게 됐지. 다른 일 해볼 생각? 글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그냥 내가 하는 일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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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맡기고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내가 신앙을 가진 건 서른 살 넘어서였어. 서울에서 순복음교회 교인들 전도로 교회를 나가게 됐지. 믿음을 가지니까 참 좋더라고. 근데 사업하다 보니 교회를 멀리할 때도 있었어. 그래도 다시 신앙을 붙잡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어. 사업이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해결될 길이 열리더라고. 그게 참 신기했어. 믿음을 가지면 마음이 편해져. 나는 지금도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살고 있어. 그게 내가 살아가는 힘이지.


당신을 만난 게,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어.

서울에서 혼자 살 때는 참 외로웠어. 그러다 1999년에 여수에 내려와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지.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결혼했어. 지금까지 25년을 함께 살았고, 난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해. 당신이랑 함께한 시간이 내게 가장 큰 축복이야. 지금도, 앞으로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냥 지금처럼 변함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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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오지만, 지나간다.

사업하면서 위기가 없었겠어? 돈 떼인 적도 많았고, 부도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 국민연금까지 해약해서 생활비로 쓰고, 집사람이 모아둔 금붙이 팔아서 버텼어. 그때는 정말 막막했어.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다 해결되더라고. 사람이 버티면 어떻게든 길이 생겨. 어려운 순간에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 나는 그렇게 살았어.


나를 기억한다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해줬으면 해.

나는 그냥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던 사람, 남들에게 따뜻했던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면 그걸로 충분해. 인생이란 게 결국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거잖아. 가진 게 많아도 결국 다 두고 가야 해. 내가 가진 건 사실 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거지, 내 것이 아니야. 그러니 내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이 나를 보며 하나님을 더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 그게 내 바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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