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오곡리에 핀 이야기

  • 엄순례 권사님
    1938년 10월 18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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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오곡리에서의 삶

우리 오곡리에 사는디, 이제 거의 칠십 년 되가는군. 여기서 내 살림살이 하며 살아왔지. 젊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농사일에 손도 많이 대보고, 맨날 바쁘게 지냈지. 아이고, 뭐든지 다 해봤다니까. 나무 패는 일부터 시작해서 눈 쌓인 밭에서 일하는 것까지. 그때그때 일이라고는 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내 삶이었네. 그렇게 평범한 날들이 모여서 내 이야기가 되는 거지. 음, 우리 오곡리에서의 내 살림살이, 그거슨 내 인생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

내 인생의 행복 - 자녀

아이고,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거라고 하면, 그건 바로 우리 아들 키워서 장가 보내고, 손자손녀들이 와서 뛰놀던 시절이지. 우리 아들, 내가 키운 네 남매 중에 하나인데, 그 중에서도 손주가 무려 여덟이나 되는군. 한이 둘, 선이 둘, 이렇게 두 명씩 낳아서 여덟이지. 그 때 그 손주들이 우리 집에 왔다 갔다 할 때가 가장 행복했네. 그 작은 발걸음 소리가 어찌나 반가웠는지. 그 때는 마음이 그저 행복으로 가득 찼었어.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동훈이처럼, 많이 없어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다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이야, 행복한 기억이란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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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컸어요."

내가 인생 돌아보면 잘했다 싶은 것이라고? 그건 바로 내가 아들을 잘 키워냈다는 거지. 별로 공부 많이 시키진 않았지만, 아들이 잘 커주고 말도 잘 듣고, 어른 말씀 잘 따르더라고. 그걸로 내가 생각해도 참 잘했다 싶어. 그리고 우리 아들이 말할 때마다, "엄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컸어요" 하고 항상 그런 소리를 해. 그 말 들을 때마다 내가 뭐라도 잘한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하더라고. 내가 그래서 잘했다고, 잘 키웠다고 생각하고, 그 때가 참 행복했다고 여겨. 결혼해서 아들네 가정을 이루고, 둘 남매씩 낳아서 키워가는 걸 보니, 그것만 봐도 행복하다니까. 지금도 나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해. 구기개 없이 살았으니까. 쌀도 기름나고, 딸기도 기름나고, 그래서 구기개 없이 살았지. 나는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해.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그 모든 게 다 내 행복의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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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에게

우리 자식들한테 마지막으로 남겨줄 말이라고 하면, 그건 바로 신앙에 대한 거지. 나는 벌써 재산 분배도 다 해놨고, 딴 걱정거리는 없는데, 가장 걱정되는 건 우리 아들, 딸들이 신앙을 안 믿는 거야. 둘째 아들네 식구도, 큰아들 식구도, 우리 딸도 말이야. 나 혼자 천국 간다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지. 그래서 자식들이 나랑 같은 길로 믿고 따라왔으면 좋겠어. 그런데 자식들이 신앙에 대해 크게 신경 안 쓰니까,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엄마만 잘 믿으면 돼" 하고, "신앙에 대해 타박하지 마" 하고 말해. 며느리들도 마찬가지고. 어쩔 수 없지만, 나는 그 말밖에 못하겠네. 내가 믿는 것처럼 자식들도 믿어보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은가 봐. 그래도 내 바램은 같이 천국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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