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옥련권사님

  • 최옥련 권사님
    1948년 04월 14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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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딸, 바다가 보이던 집에서 시작된 내 인생

나는 1946년, 영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어요. 요즘은 다들 도시로 나가 사는 걸 당연히 여기지만, 나는 그래 본 적이 없어요. 어릴 적 우리 집은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지요. 동쪽 문을 열면 바다에서 해가 쭉 올라오는 게 보였고,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요. 그게 내 인생 첫 기억이자,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풍경이에요.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한 분들이셨어요. 밭일도 하고, 장에도 다니고, 집안도 잘 돌보셨지요. 어머니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분이셨고, 아버지는 늘 묵묵히 일만 하셨던 기억이 나요. 형제자매는 많았고, 나는 그 중에서도 얌전한 아이였어요. 시끄럽게 나서지도 않았고, 말도 많지 않았지요. 그냥 시키는 일 묵묵히 하고, 동네에서 조용히 지내던 아이였어요. 그 시절엔 뭐든 손으로 해야 했지요. 물 긷고, 장작 패고, 논밭일도 도와야 했고. 학교는 초등학교만 다녔고, 더 배우고 싶단 마음도 있었지만 형편이 안 됐어요. 대신 삶을 배웠지요. 어른들 하는 말 귀담아 듣고, 몸으로 도우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법을 익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바닷가 집이 내 인생의 시작이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 같아요. 그 시절은 비록 어렵고 가난했지만, 정직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살았기에 더 따뜻했지요. 나는 지금도 그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바다가 보이던 그 집에서, 내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26살에 떠난 고향, 그리고 삼천포로 가는 배 멀미 신행길

나는 스물여섯에 시집을 갔어요. 그전까지는 영덕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시집을 간다고 짐을 꾸려 삼천포로 향하게 됐지요. 요즘처럼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땐 배를 타야 했어요. 영덕에서 포항으로, 포항에서 부산, 거기서 또 배를 타고 삼천포까지 가야 했어요. 그 신행길이란 게 참 멀고도 멀었어요. 배 안에서 멀미가 얼마나 심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짐도 무겁고, 낯선 사람들 틈에서 마음도 불안하고...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 맞나' 싶을 만큼 막막했지요. 삼천포에 도착해서는 친정 생각에 눈물부터 나더라고요. 고향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 가슴 아픈 줄 몰랐어요. 시집살이도 쉬운 게 아니었어요. 말도 낯설고, 사는 방식도 달랐고, 음식 하나 하는 데도 눈치가 보였어요. 그런데도 묵묵히 했어요. 친정어머니가 그랬거든요. “시집가면 입은 닫고 손은 열어라.” 그 말 가슴에 새기고 살았어요. 참아야 할 일이 많았지만, 나중에 보면 다 지나가는 거더라고요. 지금은 그 삼천포도 정든 곳이 됐어요. 내 젊은 날이 시작된 자리였고, 인생을 배우고 가족을 이룬 곳이니까요. 고향을 떠나는 건 아팠지만, 그 길 끝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삶이 있었음을 지금은 알아요. 그 멀미 나던 신행길, 돌아보니 믿음의 여정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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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단둘이 살며 배운 순종의 지혜

삼천포로 시집가서 내가 처음 산 집엔 시어머니랑 나, 딱 둘이 있었어요. 요즘은 시어머니랑 같이 산다 하면 힘들다고들 하지만, 그땐 당연한 일이었어요. 남편은 직장 때문에 바깥으로 돌았고, 나는 집에서 시어머니 모시고 살림했지요. 시어머니는 조용하신 분이었어요. 큰소리도 안 내시고, 내게 무슨 잔소리를 하신 적도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도 나는 항상 긴장했어요.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되고, 무슨 일 하나 할 때도 괜히 눈치가 보이고요. 그렇다고 불편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마음을 낮추게 되더라고요. 그분과 살면서 배운 건 ‘순종’이었어요.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것. 예를 들어 반찬 하나를 해도 시어머니 입맛에 맞게 하려고 더 신경 쓰게 되고, 빨래도 내가 원하는 방식보다 어른의 방식을 먼저 생각했지요.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니까 마음이 다스려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어요. 내가 그렇게 조용히, 성실히 살아가니까 시어머니도 내게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함께 장 보러 가고, 집안일도 같이 하면서 정이 들었어요. 돌아보면 참 감사한 시절이에요. 누가 시집살이가 힘들지 않겠냐 묻지만, 나는 그래요. 순종으로 섬기면 하나님이 그 관계도 복되게 하신다고. 그건 내가 몸으로 배운 진리예요.


아들의 죽음, 눈물 속에서도 붙든 하나님

내가 그 일을 겪고도 살아 있다는 게 지금도 기적 같아요. 첫째 아들이 서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정말 무너졌어요. 아무 예고도 없이, 사고 하나로 그렇게 내 아들이 떠나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아침부터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는데, 그날 오후 갑작스레 들려온 비보에 다리가 풀려버렸어요.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집 안엔 아들 흔적이 가득했어요. 방 한 켠에 놓인 옷, 손때 묻은 물건들, 그걸 보는 순간순간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왜 하필 내 아들이어야 했을까'라는 원망과 눈물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기도라는 것도, 믿음이라는 것도 잘 몰랐던 내가 그때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어요. 말이 안 나와서 그냥 울기만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눈물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안아주시는 걸 느꼈어요. 아무도 내 맘을 몰라줄 때, 하나님만은 조용히 내 곁에 계셨지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고, 어느 주일 예배 때 들은 말씀이 내 마음에 박혔어요. "네 아들은 지금 내 품에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그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지금은 감사해요.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했을 거예요. 내 아들은 떠났지만, 그 사건은 내 인생의 믿음이 자라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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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신앙의 시작, 주님 앞에 무릎 꿇기까지

나는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닌 건 아니었어요. 믿는 사람들은 주변에 많았지만, 나는 그냥 조용히 내 할 일 하며 살았지요. 기도라는 것도 멀게 느껴졌고, 예배는 남의 일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마음이 허전하고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느껴졌어요. 아무리 열심히 살고, 가족 위해 애써도, 마음속엔 뭔가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지요. 그때 우연히 교회에 가게 되었어요. 누가 강제로 끌고 간 것도 아니고, 누가 특별히 전도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마음이 끌려서 가봤지요.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목사님의 말씀이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주일이면 교회로 향했어요. 마음이 참 따뜻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처음엔 어색했어요. 두 손 모으는 것도 서툴고, 찬양도 몰랐어요. 그런데 그 모든 걸 하나님은 다 받아주시더라고요. 울면서 기도한 날도 있었고, 혼자 앉아 조용히 눈 감고 하나님을 생각했던 시간들도 있었어요. 그렇게 한 걸음씩 다가갔지요. 내가 믿음을 갖게 된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었어요. 하나님이 다가오시니까, 나는 그저 무릎 꿇게 되었지요.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면 감사뿐이에요. 늦게라도 하나님을 알게 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복이에요.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 문을 두드리셨고, 나는 조용히 문을 열었어요.


대탄 갈릴리교회,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된 교회 이야기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탄 갈릴리교회가 처음 생길 때, 사실은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되었어요. 그때는 예배당이 따로 없었고, 믿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예배드릴 공간을 찾고 있었지요. 목사님과 몇몇 성도들이 우리 집에 오셨고, 나도 마음을 열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그렇게 우리 집 마당에 천막 치고, 작은 의자 놓고, 찬송 부르고 기도하면서 교회가 시작된 거예요. 주일 아침이면 이른 새벽부터 마당을 쓸고, 의자 정리하고, 바닥에 먼지 안 나게 물도 뿌리고, 그렇게 예배 준비를 했어요. 사람 수는 많지 않았지만, 마음은 하나였어요.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자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거였지요. 그 자리에 앉아 찬양 부르며 눈물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예배가 끝나고 나면 밥 한 그릇 같이 나눠먹고, 차 마시며 서로 마음을 나눴어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회를 위해서라면 뭐든 아끼지 않았어요. 나도 택시 일 하면서 번 돈으로 작은 헌금도 드리고, 기도도 끊이지 않았지요.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된 그 작은 모임이 점점 자라고, 지금의 예배당까지 세워진 걸 보면, 그저 눈물이 나요.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일을 시작하셨어요. 나는 그저 순종했고, 그 순종이 씨앗이 되어 교회가 세워졌어요. 지금도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 그때 마당에 앉아 기도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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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택시 기사로 살아온 믿음의 발걸음

나는 한때 택시를 몰았어요. 여자 운전사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지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을 태우고, 낮밤 가리지 않고 도로를 달렸어요. 처음엔 무섭고 어려웠지만, 생계를 위해 시작했고, 어느새 내 일이 되었지요.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그 길에서, 나는 참 많은 걸 배웠어요. 그 중 제일 먼저 배운 건 인내였어요. 고된 손님도 있었고,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웃으면서 참고 넘겼지요. “하나님, 오늘도 제 입술에 평안을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며 핸들을 잡았어요. 나를 믿고 타는 손님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더 조심하고 정직하게 일했어요. 택시 안은 때로는 예배당이 되기도 했어요. 마음이 지칠 땐 찬양을 조용히 틀어놓고, 쉬는 시간엔 차 안에서 기도도 했어요. 어떤 날은 손님과 대화 나누다 하나님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믿음으로 달렸어요. 택시를 타고 일하면서 번 돈으로 교회에 헌금도 드리고, 목사님 사례비가 모자라면 조용히 보탠 적도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힘든 일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걸 매일 느꼈기에, 그 길도 복된 길이었어요. 지금도 생각해요. 내가 달렸던 그 모든 길 위에, 하나님이 함께 타고 계셨다고.


교회와 목사님을 위한 기도, 내 하루의 시작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기도부터 해요. “하나님, 오늘도 우리 교회 지켜주시고, 목사님 말씀에 기름 부어주세요.” 이 기도가 내 하루의 시작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나한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요. 목사님은 늘 앞장서서 힘든 일도 마다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니까, 나라도 기도로 붙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말로는 다 표현 못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으니까요. 예배 시작 전에도 조용히 앉아 속으로 기도해요. “오늘 예배에 하나님 임재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로 예배의 문을 열어요. 주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교회 문 열려 있으면 잠깐이라도 들어가 기도하고 나와요. 청소할 일 있어도, 물건 옮길 일 있어도, 마음속으로는 늘 기도하고 있어요. 교회가 내 집 같고, 성도들이 내 가족 같으니까요. 하나님이 주신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건, 내게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어떤 날은 몸이 안 좋아서 집에서 기도만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가 있어요. 목사님 설교 준비하실 때 힘드시지 않도록, 찬양 인도하시는 분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나는 그렇게 이름 없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하루가 기도로 시작되고 끝나는 이유, 그건 하나님이 지금도 교회 가운데 살아계시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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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하나님, 그리고 앞으로의 삶

하나님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함께 계셨던 분이에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울던 날에도, 그분은 내 옆에 계셨어요. 나는 잘 몰랐지만, 돌아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으셨어요.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힘이고, 내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이에요. 젊은 날엔 그냥 열심히만 살았어요. 믿음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마음 한켠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기도라는 걸 배우게 되었고, 교회라는 집이 생겼어요. 그게 내 인생을 바꿨어요.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사는 게 달라졌어요. 같은 일을 해도 마음이 달라졌고, 같은 하루를 살아도 감사가 생겼어요.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받고, 몸이 아플 때도 있었지만, 기도하는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그게 믿음이고, 은혜지요. 지금 내 나이가 되니, 매일이 선물처럼 느껴져요. 건강도, 일도, 사람도… 모든 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내 삶의 방향은 같아요. 하나님 바라보며, 기도하며, 조용히 예배드리며 살아가는 것. 그게 내 인생의 결론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에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