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이긴 고난, 은혜로 채워진 삶

  • 장경임 권사님
    1966년 01월 12일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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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교회 장경임 권사, 믿음의 뿌리를 말하다

장경임 권사의 신앙은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밝혔으며, 특히 할머니의 깊은 믿음이 신앙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릴 적 다니던 서촌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현재의 성전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함께 자신도 동참하며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 대를 이어 교회를 섬기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오랜 신앙생활은 3분기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질병이 이끈 회심, 새로운 사명의 시작

중학교 졸업 후 부산에서 회사 생활을 하던 장경임 권사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바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오른손에 심한 습진이 생겨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니의 권유로 엄마에게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때가 마침 교회 여름 성경학교 기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아픈 몸으로 교회를 다시 찾았을 때, 청년들과 함께 여름 성경학교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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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교회를 섬기는 반주자의 삶

손 치료를 받던 중, 당시 오르간을 치던 언니가 결혼할 시기가 되자 그녀에게 오르간을 배워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장경임 권사는 오른손이 아픈 상황이었고, 연주법도 전혀 몰랐지만, 오르간을 홀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밤마다 홀로 연습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송가를 익혔고, 성령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새벽 예배와 수요일 저녁 예배의 피아노 반주를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권사님은 맡은 자리에서 헌신하며,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감사하게 섬기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믿음 안에서 세워진 가정과 자녀들의 축복

장경임 권사는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권사님은 남편을 교회 여름 성경학교와 교사로 함께 섬기던 시절에 만났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녀에게 "교회 오빠"였으며, 함께 믿음 생활을 하며 결혼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은 현재 서촌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다섯 자녀 모두 믿음 안에서 결혼하여 신앙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며느리까지 믿는 사람을 만나 더욱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쌍둥이 중 한 명인 둘째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신학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현재 전도사로 사역 중이며 목사 고시까지 합격했다고 합니다. 사위도 목사이며, 다른 자녀들의 배우자들도 모두 믿는 가정 출신이어서 "최고 좋은 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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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낸 신앙 교육

장경임 권사는 다섯 자녀를 키우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녀들의 대학교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녀들에게 직접적인 신앙 교육을 강하게 시키기보다는, 밤마다 부엌 문을 잠그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기도 외에는 해줄 것이 없었지만, 자녀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다섯 자녀 모두가 삐뚤어진 애들 없이 잘 자라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표현했습니다.


고난을 이겨낸 믿음의 선택과 하나님의 은혜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돈을 벌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경임 권사는 주일을 먼저 생각하며 주일에 쉬는 직장을 선택했습니다. 월급은 적었지만 신앙을 최우선으로 하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고,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수 있게 되고 빚도 조금씩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기간에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믿음으로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결국 은혜로 마무리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과거에는 어려울 때 늘 물질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지금은 전혀 안 한다며 오직 감사가 넘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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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 서촌교회와 공동체의 이야기

장경임 권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막내 신웅이를 임신했을 때, 약 30년 전의 일인 서촌교회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당시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를 비롯한 온 성도들이 벽돌을 지고 나르고, 식사 당번을 하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모여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특히 온 성도들이 인건비 없이 직접 노동력을 제공하여 교회를 완공했다고 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과정에서 트러블 한번 없이 성도들이 하나 되어 교회를 지었다는 점입니다. 이제는 건축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하나님께서 그 빈자리를 새로운 성도들로 채워주심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촌교회는 단순히 교회를 넘어 마을 문화의 중심이 되어 술 먹고 난동 부리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마을을 만들었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현재 서촌교회는 약 90-100명의 성도가 출석하며, 여천에 살던 자녀들이 다시 돌아와 교회를 섬기는 등 세대 간 신앙의 계승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서촌교회의 자랑으로 청년들이 찬양을 열심히 하는 "살아있는 찬양대"를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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