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신앙의 굴곡
권사님은 결혼할 무렵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집에서는 며느리 볼 욕심으로 성경책도 하나 준비해두고, 교회 가는 것은 안 말린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시집온 뒤 교회는 산 너머 멀리 떨어져 있었고 길이 매우 험난했습니다. 교회를 다녀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하고 밭에 밥을 갖다 주는 등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다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회상합니다.
신앙의 굳은 결심
몇 번이나 교회를 오가던 권사님의 삶에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린 사형제 자녀들을 홀로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때 권사님은 "아이들을 똑바로 키우려면 무조건 예수 믿고 교회를 가야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아버지 없는 아이들을 빚 안 지고 키우게 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 기도 이후 눈물이 말라 지금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이때 "죽어도 믿고 살아도 믿고 하나님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네 명의 자녀 모두 빚 하나 없이 바르게 자라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을 만큼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20년간의 우유 배달과 자녀들의 성공적인 양육
권사님은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20년 가까이 우유 배달을 했습니다. 새벽에 3시간 이상 잠든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회상합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자녀들은 빗나가지 않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깨달은 감사
권사님은 삶 속에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았다고 고백합니다. 새벽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헬멧도 쓰지 않은 채 크게 다쳐 관절이 부러지고 얼굴 전체가 긁히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뼈에는 이상이 없어 감사했습니다. 또한 위암 진단을 받아 위를 완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음에 "하나님 은혜지 하나님 살려줘"라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아파도 감사한 것밖에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은 자신에게 "최고 좋은 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청송교회를 향한 헌신
권사님은 청송교회에서도 헌신적인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부엌일이나 심부름 등 손발이 빨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도왔고, 우유 배달 중에도 틈만 나면 교회에 와서 봉사했습니다. 특히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워 건축 헌금이 필요했을 때, 그는 작은 밭 하나를 팔아 천만 원을 헌금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한 달에 2만 원씩 3년간 모아 100만 원을 자녀들을 위해 쓰지 않고 교회에 바치며 교회를 위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교회와 가족을 향한 간절한 바람
윤순덕 권사님은 청송교회가 "무조건 잘 되고 부흥하며 예수 잘 믿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서로 존경하며 격려하여 모두 천국에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것을 당부하며, 건강과 행복을 빌고 모든 가족을 사랑한다고 전합니다. 그는 장례식에서도 자녀들에게 슬퍼하지 말고 기쁨으로 자신을 보내달라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권사님은 마지막으로 청송교회를 위한 기도를 통해,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하며 부흥하여 많은 이들이 예수 믿고 천국 갈 수 있는 성전이 되기를 간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