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자 김원수 부부

  • 안영자 님
    1951년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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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시 시내에 나가 살다가 마을로 돌아왔다. 영자씨는 포항 대송 출신이다. 78년도 명절에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원수씨는 부인과 둘만의 추억 같은 걸 못 만든 게 아쉽다. 아들만 2명 낳았다. 아들들은 죽천 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는 학군제 때문에 포항중고등학교로다녔다. 한 아들 이름이 김우재이다. 옛날에 총각인 삼촌이 한 명있었는데 우재를 한방 톡 때려서 울리고 "우재 또 우재~" 하면 서놀리곤 했다. 현재 사는 터에서 예전부터 살았다. 옛날에는 이 집이 기와집이었는데 집이 좁고 겨울에 추워 제사 때 사람이 모이면 불편해서 집을 크게 새로 지었다. 옛날에는 한방에 모여 자기 힘들 정도로 식구가 많았고 집안행사를 하면 몇 촌까지 다 이 집에 모였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부인과 친어머니밖에 없고 집안행사는 밖에 나가서 하니 집이 크게 느껴진다.

마을에서 벼농사 위주로 농사를 짓고 밭에서는 콩과 보리를 지었다. 그러다 쌀과 콩과보리로는 별 소득이 없어서 새롭게 시금치를 지었다. 최초로 엽채류 품질인증을 받기도했으며 전에 공항에 가면 현수막도 걸렸었다. 20년 전쯤 포항 공단이 들어서면서농장이 많이 없어져 지금은 예전에 하던 농장의 일부에서 시금치를 조금 짓고 논에서벼농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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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씨는 3년씩 연임을 해 6년째 이장을 하고 있으며 올해가 마지막 해이다. 구정과정월 대보름인 음력 2월 1일 명절마다 행사를 한다.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윷놀이를 한다. 포스코와 한동대와 자매결연 마을이여서 윷놀이 하면 김영길 총장도 오곤 했다. 최근에도 사무처장하고 한 번씩 오곤 한다. 원수씨는 이 마을은 이웃들이 오순도순하게 잘 지내서 시내보다 낫고 전국적으로대문 없는 마을이 몇 안 된다며 자랑스러워한다. 인심 좋은 마을답게 이 집 마당에 일요일마다 교회 사람들이 차를 대고 아이들이 공을 차며 노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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