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곡강교회의 역사와 성립
1957년 추석날 너구마을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박두만 장로 시무.
(참고) 1957년 총수입은 87,030환인데, 포항제일교회로부터 죽천교회를 통해 지원된 금액이 59,280환, 부례문선교사 10,000환, 홍리분헌금 1,000환 성탄헌금 300환 기타이고 총 지출은 86,445환이었다. 당시에 쌀 1되 값은 270환이었다.
1958년 첫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1959년 교회당을 고쳐지었다. 김영상 장로 시무.
1961년 조복생 전도사 시무.
1963년 이영수 전도사 시무.
1964년 신진찬 전도사 시무.
1965년 신창국 전도사 시무.
1966년 김도역 전도사 시무.
(참고) 1966년 8월 1주 헌금액이 50원, 2주 48원, 3주 27원, 4주 6원이었다. 1966년의 맥추감사 봉헌자는 5명이었는데 헌금 1,200원과 보리쌀 7되, 밀 3되였다. 당시에 석유 1되 값은 25원이었다.
1967년 최복란 전도사 시무.
1970년 1월 이종태 전도사 시무.
1970년 8월 이규상 전도사 시무.
1971년 블록건물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박석해 전도사 시무.
1974년 조의동 장로 시무.
(참고) 1974년 맥추감사 봉헌자는 17명이었는데, 헌금 1,300원, 보리 1가마 25되, 보리쌀 34되밀 1말이었다. 연간 총수입은 151,855원, 총지출은 146,644원이었다
1977년 조영식 전도사 시무.
1979년 사택을 신축하였다. 안학용 장로 시무
2. 곡강교회의 발전
1983. 8. 23 장로 장립: 김용호, 집사 안수: 황영백
1984. 3. 25 전광섭 전도사 시무.
1985. 9. 17 임순련 전도사 시무.(시무 중 목사안수)
1990. 4. 5 조성화 전도사 부임.
1995년 현재의 교회당 부지 (55-1번지, 130평)를 매입하였다
1996. 3. 17 이영환 목사 부임
1997. 4. 10 54회 포항노회시에 교회의 명칭을 [곡강교회]에서 [곡강중앙교회]로 변경하였다.
1997년 새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1997. 5. 4 창립 40주년을 맞아 40주년 기념예배 및 새성전 헌당과 임직예배를 드렸다.
1998. 12. 17 이영환 목사 사임.
1998. 12. 29 김종하 목사 부임.
1999. 2. 21 권현정 선교사 파송예배. (연변)
1999. 12. 26 최숙희 선교사 파송예배. (카자흐스탄)
2003. 10. 26 목사 위임 : 김종하
2004. 1. 4 박영권 교육전도사 부임.
2006. 12. 25 박영권 교육전도사 사임.
2007. 7. 8 안치량 교육목사 부임.
2007. 11. 9 창립 50주년을 맞아 희년감사 및 은퇴 임직예배를 드렸다.
2009년 3월 1일 김병관 교육전도사 부임.
2014년 1월 26일 김병관 교육전도사 사임.
2014년 1월 26일 김병관 온현정 선교사 파송.(P국)
2015년 6월 28일 안치량 교육목사 사임.
2017년 3월 포항노회시에 교회의 명칭을 [곡강중앙교회]에서 [곡강교회]로 변경하였다.
2017년 6월 10일 창립 60주년 감사 및 은퇴 임직예배를 드렸다.
3.곡강교회의 특별 활동
선교회 활동
2000년 곡강교회는 4개의 '선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지금까지 성별과 연령에 의해 구성되었던 기존의 남녀 전도회와 달리, 임무를 가지고 활동하는 역동적인 선교활동을 위한 것이었다. 이 '선교회'들은 2011년 ‘모둠’이 출범하면서 형태를 바꾸게 된다.
작은자선교회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한다.
사랑의 집짓기
1호 : 2000년 흥해읍 칠포리 양광덕 할아버지 집을 지었다.
칠포 산자락에 있는 쇠락한 노부부의 집을 두 번 고쳐드렸으나 쇠락상태가 심하여 집 전체를 철거하고 새로 지었다. 전 교인과 함께 해병대원이 집짓기에 참여하기 시작한 일이다. 현재 할머니는 별세하였다.
2호 : 2001년 청하면 청계리 성연이네 집을 지었다.
할머니와 두 손자가 사는 조손가정의 집이 낡아서 본채를 두고 곁채를 새로 지었다. 전 교인이 참여하여 건축하는 경험이 시작된 일이다. 현재는 형제 모두 군대에 다녀와서 서울과 대전에 취업하였다.
3호: 2002년 흥해읍 오도리 언어장애 할머니의 집을 지었다.
집이 퇴락하여 전교인과 학생 청년들이 함께 지어드렸다. 현재 할머니는 건강이 호전되었으며 생활도 좀 나아졌다.
4호: 2002년 흥해읍 칠포리 정천수 씨네 집을 지었다.
칠포 마을 가운데 있는 정신지체장애 부부와 두 자녀의 집이 낡아서 전 교인이 지었다. 이 가정은 현재까지 교회에서 관찰하고 있으며 약간의 생계보조를 하고 있다. 5호: 2003년 청하면 덕성리 황노미 할머니의 집을 고쳤다.
청하정 뒷집의 독거 할머니 집을 증축해 드렸다. 할머니의 편의를 위해서 화장실과 욕실을 지어드렸다.
6호: 2004년 흥해읍 매산리 박근환 씨의 집을 지었다. 소아마비로 신체장애가 있는 가정의 쇠락한 집을 전 교인이 지었다. 현재 아버지는 작고하고 자녀 셋이 성장하고 있다
7호: 2004년 흥해읍 봉림마을 전성환 씨의 집을 지었다.
장애인의 집이 화재를 만나 불타버리고 폐가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전교인이 합심하여 집을지어드렸다. 그 뒤 교인이 되어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8호: 2005년 흥해읍 학천리 마을 가운데 장애인 강귀순 씨 집을 지었다.
장애인 부부와 장애인 아들이 사는 집을 지었다. 인근의 다른 폐가에 살다가 쫓겨나게 되었는데전의 지주가 허락한 텃밭에 태양열 시설과 함께 집을 지었다.
9호: 2007년 흥해읍 용천리 서우연 씨 집을 지었다.
곡강초등학교 앞의 정신지체장애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는 집을 지었다. 화장실도 없이 낡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 지어드렸다.
10호 : 2011년 흥해읍 죽천리 김출이 씨 집을 지었다. 소아마비 지체장애인 부부의 집이 낡고 지대가 낮아서 살 수가 없었으므로, 전 교인이 바닥을높이고 조립식 주택을 외부에서 완성하여 옮겨 앉히고 편의시설을 설치하였다.
11호 : 2013년 흥해읍 대련리 노인부부의 집을 지었다.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마을 외딴 곳에서 산지기로 살던 노인이 그 집에서 나가게 되었지만 집이없었으므로, 마을 가운데 터를 허락받아 교인들이 힘을 모아 아담한 집을 지었다.
12호 : 2016년 흥해읍 금장리 이병권 씨 집을 지었다. 연세가 높아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독거노인에게, 옛날 집이낡고 불편하였으므로, 화장실이 실내에 있고 턱이 없는 집을 새로 지었다.
새하늘새땅선교회
건강한 생산과 소비를 실천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교인들이 함께 주말농장을 가꾸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며 몸에 좋은 농산물을 소비하는 활동을 한다.
문화선교회
건전한 문화를 향유하며 공동체의 교양을 높이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문화 행사를기획하고 간행물을 편집 출판하는 활동을 한다.
들판음악회
2000년 첫 들판음악회 : 실제로 추수가 끝난 논에서 시행되었다. 11월 12일 주일 오후에 볏짚을 깐논에서 첼리스트 전성희씨와 복음가수, 곡강 청년과 해병대원 등이 어울려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해질 무렵까지 아름다운 음악회를 열었다.
2001년 복음가수 조광희씨와 다른 음악인들을 초청한 음악회는 날씨가 흐려서 교회 안에서 열렸다.2003년 복음가수인 한동대학교 조준모 교수를 초청한 음악회는 비가 내려서 교회 안에서 열렸다.2006년 복음가수 홍순관 집사를 초청한 들판음악회가 열렸다.
2007년 복음가수 홍순관 집사를 초청한 부활절 음악회 '다함께 봄'은 곡강교회가 주최하고 인근의 다섯 교회가 연합하여 곡강 야외공연장에서 열렸다.
군선교회
교회에 출석하는 해병대원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해병대원에게 평안한 예배환경을 제공하고 신앙적 변화를 인도하는 활동을 한다.
해병대
해병대 1사단에 소속되어 흥해 해안을 방어하는 흥해중대는 곡강교회 인근에 있다. 해병대원 중에서 교회출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부대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인 곡강교회에 드문드문 3명 정도 나오고 있었다.
곡강교회는 1999년부터 적극적으로 해병대와 접촉하면서 승합차를 운행하는 등 활발하게 종교활동을 지원하였다. 그 결과 매주 십여 명의 대원이 출석하고 때로는 수십 명의 대원이 함께 예배하는 광경을 이루기도 했다. 그 중 일부는 신앙을 고백하고 곡강교회에서 세례를 받기도 했고 교회에 나온 인연으로 결혼한 사람도 있었다. 대원들은 평안하게 예배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과 청년부 활동에 동참하며 이웃돕기 사업에도 중요한 인력이 되어주고 있다.
부대 사정에 따라 2009년 중대본부가 이전하여 잠시 해병대원의 출석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부대가 다시 옮겨오면서 교회출석이 재개되어 현재까지 활발하게 출석하고 있다.
열방선교회
선교사를 지원하고 우리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국내외 전도사업에 참여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선교사 파송
김병관 선교사는 1998년 한동대학교 학생으로 너구마을에서 자취하는 청년이었다. 당시 곡강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와 마을에 정을 붙인 김 선교사는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대학교에 직장을 정하면서 다시 교회에 정착하였다. 그러던 중 선교의 소명을 깨달은 김 선교사는 부인 온현정 선교사와 함께 성경번역선교회의 선교사로 허입을 받아 한동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성경번역에 대해 공부하였다.
대학원과정에 있으면서 곡강교회의 중고등부 전도사로 일한 김 선교사 부부는 2014년 성경번역선교회의 지명에 따라 P국으로 파송되었다. 이때 곡강교회는 교회의 결의에 따라 김 선교사의 주 파송교회가 되기로 결의하였으며 김병관 온현정 선교사는 곡강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되었다.
모둠 출범
2011년 '모둠'을 출범하였다. 모둠은 종래의 선교회와 구역 개념을 통합하여 '교회 안에 있는 생명력 있는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가치관과 성향을 공유하는 모둠원들이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새로운 모둠을 창출하도록 활동하는 것이다. 각 모둠은 모둠지기와 말씀교사와 모둠원으로구성되어 있다.
소망모둠 : 65세 이상의 연로한 교인들로 구성한다. 임무는 없으며 교회의 봉양을 받는다.
백합모둠 : 학업을 마친 미혼교인들로 구성한다. 신앙을 굳게 하고 다른 모둠을 지원한다.
작은자모둠 : 구 작은자선교회의 활동을 계승한다.
섬김모둠 : 교회 인근의 이웃들을 돌보는 임무를 가진다. 마을의 어른들에 대해 건강을 살피고 경조사를 챙기며 생활의 필요를 채워준다. 2015년 작은자모둠과 임무를 통합하였다.
만나모둠: 구 새하늘새땅선교회의 활동을 계승한다.
이슬모둠 : 구 문화선교회의 활동을 계승한다.
땅끝모둠 : 구열방선교회의 활동을 계승한다.
기드온모둠 : 구 군선교회의 활동을 계승한다.
4.곡강의 꿈
곡강리의 모든 마을들은 큰 변화를 맞았다. 모든 자연마을들이 급격한 인구감소를 맞아 인구과밀지역에서 인구희소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원래 이 마을들의 생산력을 유지시켜주던 농업생산이 쇠퇴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도시의 팽창과 공업지역 지정으로 인해 곡강 마을들은 외형상으로도 크게 변화할 예정이 되어 있다.
곡강에서 예측되는 큰 변화는 다음과 같다.
이에 따라 곡강의 각 마을이 겪게 될 변화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곡강 마을들이 어떻게 변하든 곡강은 모든 곡강 사람들의 추억과 꿈으로 남을 것이다. 곡강에서 나고 자라서 곡강을 떠나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곡강은 여전히 고향의 따뜻한 품으로 그리움 속에 생동하게 될 것이다. 차츰 마을을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고 그들에 의해마을의 인심과 문화가 재생된다면, 곡강교회는 그 중심에서 그들과 함께 지역교회의 역할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곡강은 도시적 삶의 혹독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쉼과 회복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도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적당한 자연과 농토가 어울린 곡강 지역은, 바쁜 일상에서 발을멈추고 뒤를 돌아보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넉넉한 휴식과 회복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자리 잡은 곡강교회는, 구원의 복음과 천국의 소망을 전하면서, 현대인이 원하는 날마다의 쉼과 회복도 주어야 한다는 임무를 기쁘게 감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