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자권사는 경산 육동이 고향이다. 고종 형부가 중매를 서서 22살에 곡강으로 시집왔다. 처음에 남편은 포스코에 다니다가 나중에 두호동에서 고기를 잡았다. 두호동에서 3년을 살았는데 술과 담배를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땅을 파며 살고 싶어서 곡강에 들어왔다. 힘들게 살았어도 두호동에서 있었던 게 추억이라고 한다. 새댁일 때 바닷가에서 주낙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이 참 재미있었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현재 김성자 권사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자식은 아들이 2명 있다. 작은 아들이 작년 4월에 결혼했다. 아들 이름이 주은, 주영인데 각각 주의 영광, 주의 은혜라는 뜻이다. 큰 아들은 벌써 자식이 3명이나 있다.
김권사는 15살 때 새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형식적으로 다니다 19살에 대전에 있는 가발 공장에서 쓰러진 뒤로 새어머니의 권유로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다닐 적에 새벽종을 한 번만 치는지 모르고 계속 두드리다가 전도사님이 나와서 말렸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시집 와서는 곡강교회에 다닌다. 남편도 함께 다녔었는데 지금은 가끔만 나온다. 김권사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며느리와 아들이 같이 교회에 다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