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진 건 많지 않아. 집 하나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 말고는 내 손에 쥔 재산 따윈 없지. 내 이도 이제 거의 없고 말이야. 그래도 난 매일 기도하고 살아. 내가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우리 자손들이 절대로 길을 잃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시고 살기를, 그렇게 기도해. 나는 내 자식들과 손주들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해. 내가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이 신앙의 가르침과 기도는, 그들에게 가장 큰 유산이 되길 바래. 그들이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기도하는 건, 그들이 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의 길을 따르며 살기를 바라는 거야. 우리 가족이 모두 하나님을 모시고,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는 매일 기도하고 또 기도해.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고, 내 마음속 깊은 바람이야. 나는 그렇게 믿음을 간직하며 살아갈 거야.
흐려진 6.25의 기억
그때 생각하면 그렇지 뭐, 그냥 그래 살아가는 거지. 그 시절에 6.25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나는 그때 17살이었어. 호적엔 15살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론 17살이었네. 그 당시에 '자유다, 자유다' 하면서 대학생들이랑 선배 언니들이 우르르 서울로 올라갔지. 그래서 난 그들 따라 나섰어. 엄마가 "그런 게 어딨냐, 넌 아직 어리다" 그랬지만, 그래도 난 따라갔지. 그 때는 진짜 불이 나서 막 타버렸어. 진짜로 막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고 그랬어. 그 시절은 진짜로 힘들었어, 밤에도 잠 못 자고. 그 후에는 우리 막내 동생도 키워야 했고, 그래서 나도 많이 고생했지. 그래도 그렇게 살아내며 공부도 하고, 그런 게 다 내 삶이었어. 결국은 여기까지 왔네. 지금은 그 동생도 퇴직하고 집에 있고,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
하지만 행복한 기억 또는 꿈
나는 꿈이랑 현실이랑 가끔 헷갈리기도 해. 그래도 그때 즐거웠던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생생하네. 옛날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맞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기억들도 희미해져 가네. 내가 처음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했을 때의 일도 기억나. 그때 안 믿었을 때였지. 그 계기로 믿기 시작했네. 꿈속에서 우리 막내딸이 큰 물건너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 꿈이 참 생생했어. 막내 사위가 목사가 되기 전이었지. 그때도 연애하고, 그 모든 걸 몰랐을 때였네. 그 사위가 노란 도시락 들고 오면 건너오면 된다고 했지. 우리 둘이 건너갔는데, 거기가 뭐 허벌판 같았어. 그런데 깨고 나니까 그게 꿈이었더라고. 그래도 그 꿈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그들이 잘 커줘서 참 감사해. 그때는 모르고 있었지만, 결국 사위가 목사가 되고, 큰딸이 전도사가 되더라고. 내가 고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게 자식들한테도 전해져서 결국 그들도 신앙의 길을 걷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