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직후, 삶은 가난했고 마음은 허기졌습니다. 영덕 시골 마을, 일본군 잔재로 남은 가옥에 미국 선교사 부부가 들어왔고, 아이들에게 찬송과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찬양을 듣고 처음 교회에 간 날, 제 마음 한가운데 따뜻한 불이 붙었습니다. 비포장 진흙길을 맨발로 걷고, 성경은 한 권도 없었지만, 말씀은 입으로 전해지고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랑이 어떤 건지 몰랐지만 마음이 울었습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친구들과 함께 예배당에서 울다 웃던 그 날들이, 제 인생의 믿음의 씨앗이 심긴 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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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랑은 인연이 없었어. 학교에 보내줘도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도망치기 일쑤였지. 아버지는 그런 나를 붙잡아 오느라 진땀을 흘리셨고, 결국엔 "얘는 안 되겠다" 하시고 일찍 시집보내기로 결심하셨지. 학교라고는 도합 30일 다녔을까? 이름 석 자 쓰는 것도 겨우였으니 말 다 했지. 그런 내가 지금 교회 권사로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라. 하지만 난 가끔 생각해. "그때 공부 안 한 게 하나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공부를 했더라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든. 내 삶엔 지식보다 믿음이 먼저 들어왔고,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왔어. 어릴 땐 울진에서 살다가 부산도 가고, 영양도 거쳐 시집을 왔어. 참 유난한 길을 걸어왔지. 남들처럼 정규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나는 삶으로 배웠고, 고난으로 익혔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으며 지혜를 배웠어. 나처럼 학교 못 다닌 사람도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증명하고 싶었어.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 그렇게 공부와 멀어진 것도 감사한 일이야. 하나님이 나를 따로 부르신 거니까. 난 책상 앞에 앉기보단, 예배당 바닥에 무릎 꿇는 법을 먼저 배웠고, 칠판보다 성경 말씀이 더 익숙한 삶을 살아왔지. 그게 내 길이고, 내가 받은 복이었어. 사람들은 배움이 없으면 못 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 내 인생엔 그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줬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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