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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옥녀 이등질 부부

이등질 회장은 12대조 대에 입향한 이 마을의 토박이이고 부인 옥녀씨는 24세에 혼인하여 들어왔다. 지금까지 2남을 낳아 길렀는데 맏아들은 포항에 나가 살고 작은 아들은 부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앞들이 거의 삼분지 일이나 반가량이 갈밭이거나 늪이었다. 저습지가 바다보다 1.5m 높고 하단에 갑문이 없었으니 작은 해일에도 해를 입었고 봉림 앞까지는 늘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1960년대에도 개간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상주에서 온 사람이 저습지를 간척 해서 농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등질 남옥녀 부부

이등질 회장은 12대조 대에 입향한 이 마을의 토박이이고 부인 옥녀씨는 24세에 혼인하여 들어왔다. 지금까지 2남을 낳아 길렀는데 맏아들은 포항에 나가 살고 작은 아들은 부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앞들이 거의 삼분지 일이나 반가량이 갈밭이거나 늪이었다. 저습지가 바다보다 1.5m 높고 하단에 갑문이 없었으니 작은 해일에도 해를 입었고 봉림 앞까지는 늘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1960년대에도 개간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상주에서 온 사람이 저습지를 간척 해서 농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강진희 한증황 부부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

한증황 강진희 부부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

최영자 할머니

영덕군 강구면 금진에서 20살에 선봐서 시집을 온 지 55년 정도 되었다. 남편은 현재돌아갔다. 딸이 6명 아들이 2명이다. 맏딸은 서울에 살고 큰아들은 포스코에 다니고작은아들은 체코에 온 가족이 나가서 산다. 첫째는 올해 57살이고 막내는 38살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 첫딸이 아이들 키우는 걸 도와줬다. 식구가 많아 명절이면 집이 꽉찬다.

이재옥씨

달전의 학천에서 22살에 시집을 와 2녀 1남을 낳았고 손자가 7명이다. 두 딸은 현재 양덕에 있다. 남편은 재옥씨보다 4살 많은데 재옥씨가 44세가 되던 해 봄에 모판을 싣고 가다 경운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후 홀로 자녀를 기르느라 고생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그 시기를 견뎌냈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이었으며 그 모습을 자식들이 본받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20년 모셨는데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없어 며느리인 자신을 딸처럼 대해주어 정이 많이 들었다. 현재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마을이 이주하지 않고 여기서 힘이 닿는대로 일하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