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장로님은 1947년에 출생하셨으며, 그가 두살이던 1949년경 어린 시절 심한 경기를 앓았습니다. 위로 두 분의 누님이 있었고 장로님은 아들로는 맏이였는데, 경기가 심하여 부모님이 양육에 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병원에 자주 다녔음에도 잘 낫지 않자, 모친은 목욕재계 후 몸을 단장하고 진보에 있는 한 절을 찾아갔습니다. 밤새도록 절하며 공을 들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부처의 목이 부러지며 그 안에서 예상과 달리 ‘상건불’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실망스러운 경험은 모친으로 하여금 절에 대한 기대를 접고 교회를 찾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석포 가구교회의 박대규 신학생이 흥구 동리에서 겨울 방학 중 노방 전도와 전도 집회를 열고 있었고, 모친은 이 집회에 참석하여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장로님의 경기로 인해 어머니가 여러 곳을 전전하다 교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장로님 자신은 경기가 언제 멈췄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서너 살 무렵부터는 경기가 덜해지고 건강을 찾았을 것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최말림 권사님은 마흔 살 무렵, 남편의 병고를 계기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어린 시절 홍역을 앓은 후유증으로 숨이 차고 피를 토하는 등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교회가 많았음에도 이전까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권사님은, 김 권사님과 김태수 장로님의 끈질긴 권유를 받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낫는다,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는 그들의 말은 권사님의 마음에 불씨를 지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권사님을 부르시어 교회를 찾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남편은 약 1년간 갈멜산 기도원에서 지내며 병세가 호전되기도 했고, 그 후 4~5년을 더 살았지만 결국 47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윤석정 집사님의 신앙생활은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촌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를 다녔으며, 특별한 의미 없이 교회에 출입했다고 회상합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형수의 소개로 순복음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인 20세 전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배준 장로는 현재 서촌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장로입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모태 신앙인이라고 회고합니다. 그의 신앙은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졌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서촌교회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장로, 어머니는 권사로서 서촌교회에서 봉사했습니다. 특히, 배준 장로의 가족은 서촌교회에서만 3대가 신앙생활을 이어온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님의 자녀들 또한 서촌교회를 다녔기에 이러한 3대 신앙의 전통이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서촌교회는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배준 장로의 아버님 세대는 교회의 초창기 이후의 다음 세대에 해당한다고 언급되어, 서촌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의 가정이 오랜 시간 함께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서촌교회 이삼영 장로님은 한때 교회를 '무지하게 반대했던' 젊은 혈기를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물두살,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우연히 교회 문을 넘어서게 된 장로님의 삶은, 그 후 오롯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채워졌습니다. 율법적인 열심에서 진정한 용납의 은혜를 깨닫기까지, 이삼영 장로님의 신앙 여정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장경임 권사의 신앙은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밝혔으며, 특히 할머니의 깊은 믿음이 신앙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릴 적 다니던 서촌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현재의 성전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함께 자신도 동참하며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 대를 이어 교회를 섬기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오랜 신앙생활은 3분기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