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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이복순할머니

삶을 돌아보면 할 이야기가 숱하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달전 끝에 있는 동네인 말밭에서 시집을 와서 딸 세 명을 낳았다. 남편은 6.25 동란에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징집되어 북한으로 올라가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 뒤로 홀로 나락베어 지게를 짊어지며 농사를 지었다. 소도 몰고 밭도 갈고 채소해서 팔러 다니며 그렇게 지냈다. 둘째 딸이 동네 총각과 결혼해 이 동네에 산다. 막내딸은 홍해에 산다. 낮에는 둘째딸 집에 나물을 다듬어 주고 거기서 밥 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돌아간다. 나물 다듬는 솜씨가 좋다. 때로는 경로당에 와서 놀기도 하고 밥도 먹는다.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예전에 이종식씨가 한동대 취직했을 때 본인 집에서 자취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종식씨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종식씨가 기타치고 노래도 불러주고 채소도 잘 다듬어주어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

윤상화 이영숙 부부

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윤상화 이영숙 부부

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서영자 할머니

죽천마을에서 자라서 이 마을로 시집왔다. 농사를 지으면서 1남4녀를 기르고 15년전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울산에 있는데 간이 안 좋아서 이식을 받고 많이 회복되었다. 딸들은 부산과 포항에 살고 있는데 막내사위가 포스코에 있다. 할머니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자주 다니는데 부분 틀니를 하려고 이를 뽑았다고 한다.

김경호씨

이 마을 토박이인데 포스코에서 30년 근무하고 마을로 돌아와 복숭아도 기르며 농사를 짓는다. 경호씨는 이 마을에서 살림이 유족한 집에서 자랐다. 마을에 흉년이 들면 경호씨 집에서 일하고 품삯을 받아 보릿고개를 넘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의 친구들은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경호씨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시내에 친구들이 많았다. 마을 살림이 나아지면서 다들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분남 권천수 부부

천수씨는 이 마을 토박이이고 분남씨는 신광 상읍에서 시집왔다. 시부모님을 효성으로 모셔서 분남시는 효부상도 받았고 1남 1녀를 낳아서 길렀다. 천수씨 집은 윗대 어른들부터 점잖은 성품으로, 이웃 동네까지 사람들 모두와 좋은 관계로 지냈다. 천수씨 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항상 한복 정장을 하고 멋있게 사셨는데, 지금도 천수씨는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천수씨도 지금은 완전히 백발이고 눈도 조금 침침하며, 분남씨도 몇 년 전에 기관지 혈관이 터져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둘 다 건강하다. 요즘 걱정은 마을이 이주하는 문제이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없는데 나중에 찾아올 고향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