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군 강구면 금진에서 20살에 선봐서 시집을 온 지 55년 정도 되었다. 남편은 현재돌아갔다. 딸이 6명 아들이 2명이다. 맏딸은 서울에 살고 큰아들은 포스코에 다니고작은아들은 체코에 온 가족이 나가서 산다. 첫째는 올해 57살이고 막내는 38살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 첫딸이 아이들 키우는 걸 도와줬다. 식구가 많아 명절이면 집이 꽉찬다.
달전의 학천에서 22살에 시집을 와 2녀 1남을 낳았고 손자가 7명이다. 두 딸은 현재 양덕에 있다. 남편은 재옥씨보다 4살 많은데 재옥씨가 44세가 되던 해 봄에 모판을 싣고 가다 경운기 사고로 돌아가셨다. 이후 홀로 자녀를 기르느라 고생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그 시기를 견뎌냈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이었으며 그 모습을 자식들이 본받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를 20년 모셨는데 시어머니가 시누이가 없어 며느리인 자신을 딸처럼 대해주어 정이 많이 들었다. 현재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사는데 마을이 이주하지 않고 여기서 힘이 닿는대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삶을 돌아보면 할 이야기가 숱하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달전 끝에 있는 동네인 말밭에서 시집을 와서 딸 세 명을 낳았다. 남편은 6.25 동란에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징집되어 북한으로 올라가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 뒤로 홀로 나락베어 지게를 짊어지며 농사를 지었다. 소도 몰고 밭도 갈고 채소해서 팔러 다니며 그렇게 지냈다. 둘째 딸이 동네 총각과 결혼해 이 동네에 산다. 막내딸은 홍해에 산다. 낮에는 둘째딸 집에 나물을 다듬어 주고 거기서 밥 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돌아간다. 나물 다듬는 솜씨가 좋다. 때로는 경로당에 와서 놀기도 하고 밥도 먹는다.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예전에 이종식씨가 한동대 취직했을 때 본인 집에서 자취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종식씨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종식씨가 기타치고 노래도 불러주고 채소도 잘 다듬어주어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
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죽천마을에서 자라서 이 마을로 시집왔다. 농사를 지으면서 1남4녀를 기르고 15년전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울산에 있는데 간이 안 좋아서 이식을 받고 많이 회복되었다. 딸들은 부산과 포항에 살고 있는데 막내사위가 포스코에 있다. 할머니는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자주 다니는데 부분 틀니를 하려고 이를 뽑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