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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천귀옥님

흥해 약성리에 살던 성환씨와 포항에 살던 귀옥씨가 결혼하여 28년이 되었다. 2남 2녀를 낳고 2000년에 봉림으로 이주해 왔다. 1남 2녀는 부부와 함께 있고 차남은 청주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동대학교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탕수육을 만들어 배달한다. 한 때는 제법 장사가 되었으나 지금은 좀 조용하다고 한다. 연전에 화재를 만나 실의에 차 있었는데 곡강교회 작은자모둠에서 집을 지어주어서 지금은 활기차게 살고 있다.

전성환님

흥해 약성리에 살던 성환씨와 포항에 살던 귀옥씨가 결혼하여 28년이 되었다. 2남 2녀를 낳고 2000년에 봉림으로 이주해 왔다. 1남 2녀는 부부와 함께 있고 차남은 청주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동대학교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탕수육을 만들어 배달한다. 한 때는 제법 장사가 되었으나 지금은 좀 조용하다고 한다. 연전에 화재를 만나 실의에 차 있었는데 곡강교회 작은자모둠에서 집을 지어주어서 지금은 활기차게 살고 있다.

황분선 윤상수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윤상수 황분선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90살의 기억

아이고, 우리는 원래 5남매였는데, 지금은 막내랑 막내 여동생, 그리고 나만 남았네.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참 한 많은 세상을 살아왔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겨우 열한 살 때였어. 그때가 일제 시대였지. 그 뒤로 삶이 참 힘들었어. 형제자매들하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애썼지.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작된 삶의 고난이었지. 아버지 없이 자라는 건 참 힘든 일이었어. 형제자매들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냈지. 어떨 때는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었어.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어. 그 모든 경험이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들었지. 아버지가 계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

70년 오곡리에 핀 이야기

우리 오곡리에 사는디, 이제 거의 칠십 년 되가는군. 여기서 내 살림살이 하며 살아왔지. 젊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농사일에 손도 많이 대보고, 맨날 바쁘게 지냈지. 아이고, 뭐든지 다 해봤다니까. 나무 패는 일부터 시작해서 눈 쌓인 밭에서 일하는 것까지. 그때그때 일이라고는 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내 삶이었네. 그렇게 평범한 날들이 모여서 내 이야기가 되는 거지. 음, 우리 오곡리에서의 내 살림살이, 그거슨 내 인생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