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차분남 할머니는 우각 맞은편 학마을 동네 댓골 차씨다. 70년도에 이 마을에 사는 7남매 중 맏이인 배두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딸 1명과 아들 2명을 낳았다. 맏이가 딸인데 포항에 있다. 곡강에 시집와 농사를 짓고 시어른을 모시며 시동생을 키우고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우사 앞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을 밤새 길러오고 나무도 직접 해서 밥을 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유부단하고 끊고 맺음이 없어 힘들었다.
철숙씨는 용안 2리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밖에 나가서 살았다. 곡강에는 중매로 결혼하면서 들어왔다. 계속 벼농사와 시금치 농사를 지었다. 남편이 장남이어서 시할아버지, 시할머니를 23년을 모셨고, 시아버지를 7년을 모셨다. 또한 시누이랑 시동생들을 다 시집 장가를 보냈다. 힘들기는 했지만 항상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고한다.
영일정씨의 입향조는 정병두씨의 7대조였다. 이귀술씨는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2남 1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하여 포항과 영천에 살고 있으며 7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오직 농사만 지었다. 포구가 없으므로 어업은 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재첩이 잡혀서 재첩잡이를 해서 돈을 조금 번 적도 있었다. 그 뒤에는 해수욕장 배후마을로 민박업이 성행했다. 온 마을이 민박 손님을 받아서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속도로가 나면서 민박이 안 되기 시작했다.
친정은 영덕 회동이었다. 이 마을의 최수덕씨에게 시집와서 2남 4녀를 낳았는데 남편이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들은 모두 포항에 살고 딸들은 포항과 부산에 산다.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것이 희망이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낯선 고장에 풍속이 달라서 많이 곤란했다. 바닷가 생활이 마음에들지 않고 살림도 곤궁하였다. 당시에는 배를 곯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75세 되던 무렵부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각장애 상태에 있다. 가까운 이웃 나들이는 하지만 생활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