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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자 할머니

친정은 달전이고 66년도 23살에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친정은 아버지때부터 과수원을 했다. 지금도 저영천에서 사과밭을 한다. 곡강에시집와서는 매일 시금치 농사를 짓고산에서 고사리 뜯었다. 안춘선 할머니와 친구인데 시집와서 부터 같이 지냈다고 한다. 안춘선 할머니는 김옥자할머니보다 한 살 어리고 여기가 고향 동네라고 한다. 항상 안춘선 할머니가 놀러 와서 함께 계신다. 자녀는 아들 2명에 딸 1명을 낳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했다. 작은 아들은 울산 현대에서 일하고 맏이는 흥해에 있고 부동산을 한다. 딸은 국민은행에 있다. 사위는 조선선재회사 일 때문에 서울에 있다. 할머니는 두 외손녀를 10년 동안 봐주었다. 아이가 워낙 착했고 10년을 키우다 보내려니 참 섭섭했다고 한다. 큰외손녀가 공부를 잘해서 올해장관상을 탄다고 한다. 친손자는 큰 아이가 13살로 내년에 중학교 간다.

이등질 남옥녀 부부

이등질 회장은 12대조 대에 입향한 이 마을의 토박이이고 부인 옥녀씨는 24세에 혼인하여 들어왔다. 지금까지 2남을 낳아 길렀는데 맏아들은 포항에 나가 살고 작은 아들은 부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앞들이 거의 삼분지 일이나 반가량이 갈밭이거나 늪이었다. 저습지가 바다보다 1.5m 높고 하단에 갑문이 없었으니 작은 해일에도 해를 입었고 봉림 앞까지는 늘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1960년대에도 개간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상주에서 온 사람이 저습지를 간척 해서 농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정애 강흥수 부부

흥수씨 부부는 포항 시내에서 살다가 집을 지어 곡강에 왔다. 자녀는 딸 1명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직장 다닌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이 집이 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2층집이었는데 매우 신경써서 지은 집이었고 공장이 하나도 없어서 경치도 좋았다. 그때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 흥수씨는 원래 현대중공업에서 1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IMF가 터지고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98년도에 버섯농장을 시작 했다. 정애씨는 남편이 버섯을 키우자고 했을 때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버섯을 기를 때 온도, 습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잘못 해서 버섯이 다 죽기도 했다. 온갖 고생 끝에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은 농사 경력이 20년 된다. 환풍기 시설, 공중에서 움직이는 트레일러 등 농장설비를 흥수씨가 손으로 만들었다.

강흥수 이정애 부부

흥수씨 부부는 포항 시내에서 살다가 집을 지어 곡강에 왔다. 자녀는 딸 1명에 아들 1명을 두었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직장 다닌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 이 집이 당시 동네에서 유일한 2층집이었는데 매우 신경써서 지은 집이었고 공장이 하나도 없어서 경치도 좋았다. 그때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 흥수씨는 원래 현대중공업에서 10년 가까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 IMF가 터지고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98년도에 버섯농장을 시작 했다. 정애씨는 남편이 버섯을 키우자고 했을 때 대책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버섯을 기를 때 온도, 습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잘못 해서 버섯이 다 죽기도 했다. 온갖 고생 끝에 방법을 터득해서 지금은 농사 경력이 20년 된다. 환풍기 시설, 공중에서 움직이는 트레일러 등 농장설비를 흥수씨가 손으로 만들었다.

한증황 강진희 부부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

김태자 최팔방 부부

김태자권사는 경산 육동이 고향이다. 고종 형부가 중매를 서서 22살에 곡강으로 시집왔다. 처음에 남편은 포스코에 다니다가 나중에 두호동에서 고기를 잡았다. 두호동에서 3년을 살았는데 술과 담배를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땅을 파며 살고 싶어서 곡강에 들어왔다. 힘들게 살았어도 두호동에서 있었던 게 추억이라고 한다. 새댁일 때 바닷가에서 주낙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이 참 재미있었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현재 김성자 권사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자식은 아들이 2명 있다. 작은 아들이 작년 4월에 결혼했다. 아들 이름이 주은, 주영인데 각각 주의 영광, 주의 은혜라는 뜻이다. 큰 아들은 벌써 자식이 3명이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