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자권사는 경산 육동이 고향이다. 고종 형부가 중매를 서서 22살에 곡강으로 시집왔다. 처음에 남편은 포스코에 다니다가 나중에 두호동에서 고기를 잡았다. 두호동에서 3년을 살았는데 술과 담배를 사는데 돈을 다 써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땅을 파며 살고 싶어서 곡강에 들어왔다. 힘들게 살았어도 두호동에서 있었던 게 추억이라고 한다. 새댁일 때 바닷가에서 주낙을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이 참 재미있었다. 처음 곡강에 왔을 때는 현재 김성자 권사님이 살고 있는 집에서 살다가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자식은 아들이 2명 있다. 작은 아들이 작년 4월에 결혼했다. 아들 이름이 주은, 주영인데 각각 주의 영광, 주의 은혜라는 뜻이다. 큰 아들은 벌써 자식이 3명이나 있다.
흥해 약성리에 살던 성환씨와 포항에 살던 귀옥씨가 결혼하여 28년이 되었다. 2남 2녀를 낳고 2000년에 봉림으로 이주해 왔다. 1남 2녀는 부부와 함께 있고 차남은 청주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동대학교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탕수육을 만들어 배달한다. 한 때는 제법 장사가 되었으나 지금은 좀 조용하다고 한다. 연전에 화재를 만나 실의에 차 있었는데 곡강교회 작은자모둠에서 집을 지어주어서 지금은 활기차게 살고 있다.
포항 출신으로 경기도 안양에 살다가 1991년 이 마을로 이주했다. 남편 라건섭(71)씨는 경기도 파주 사람인데, 아내를 따라 아랫각단으로 들어와 ‘회나무치킨집’을 운영했다. 1남 2녀가 있는데 다 나가 살고 있다.
삶을 돌아보면 할 이야기가 숱하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달전 끝에 있는 동네인 말밭에서 시집을 와서 딸 세 명을 낳았다. 남편은 6.25 동란에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징집되어 북한으로 올라가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 뒤로 홀로 나락베어 지게를 짊어지며 농사를 지었다. 소도 몰고 밭도 갈고 채소해서 팔러 다니며 그렇게 지냈다. 둘째 딸이 동네 총각과 결혼해 이 동네에 산다. 막내딸은 홍해에 산다. 낮에는 둘째딸 집에 나물을 다듬어 주고 거기서 밥 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돌아간다. 나물 다듬는 솜씨가 좋다. 때로는 경로당에 와서 놀기도 하고 밥도 먹는다.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예전에 이종식씨가 한동대 취직했을 때 본인 집에서 자취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종식씨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종식씨가 기타치고 노래도 불러주고 채소도 잘 다듬어주어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
상화씨는 영숙씨와 영해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그 뒤에 강원도 태백에서 15년간 석탄캐는 일을 하다가 장모를 모시고 이 마을로 내려왔다. 영숙씨는 죽도시장에서 횟집을 22년간 했다. 부부는 2남1녀를 낳았다. 막내아들 외에는 다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큰아들은 농사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상화씨가 농사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딸은 인하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사위는 자주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장인어른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전화도 못한다고 한다. 영숙씨는 2010년에 유방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투병중인데 상화씨는 부인이 어서낫는 것이 소원이다.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