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면에서 태어나 동해면으로 시집을 가서 살다가 여기로 왔다. 친정이 큰집이라 매일 고기반찬을 하고 손님도 많이 와서 좋았는데 커서 보니 매일 상 차리고 제사지내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어 힘들었다. 물도 멀리서 이어와야 했는데 물 길어 밥하고 설거지하느라 고생했다. 그 때문에 성자씨는 부잣집이나 맏이에게는 절대로 시집을 안 가겠다며 당시에 좋은 사람들 중신 들어온 걸 마다하고 이 집에 시집을 왔다. 처녀때부터 오빠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중신을 해주었다. 남편은 9남매 중 둘째였는데 시어머니가 소아마비로 몸 한쪽을 잘 못 쓰는 분이었다. 시어머니가 장가간 큰형님이랑 살겠다고 했는데 큰형님네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지않겠다고 하여 성자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시동생과 시누이를 돌보고 학교를 보내고 시집 장가를 다 보냈다.
삶을 돌아보면 할 이야기가 숱하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달전 끝에 있는 동네인 말밭에서 시집을 와서 딸 세 명을 낳았다. 남편은 6.25 동란에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징집되어 북한으로 올라가서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 뒤로 홀로 나락베어 지게를 짊어지며 농사를 지었다. 소도 몰고 밭도 갈고 채소해서 팔러 다니며 그렇게 지냈다. 둘째 딸이 동네 총각과 결혼해 이 동네에 산다. 막내딸은 홍해에 산다. 낮에는 둘째딸 집에 나물을 다듬어 주고 거기서 밥 먹고 해떨어지면 집에 돌아간다. 나물 다듬는 솜씨가 좋다. 때로는 경로당에 와서 놀기도 하고 밥도 먹는다. 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한다. 예전에 이종식씨가 한동대 취직했을 때 본인 집에서 자취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 종식씨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종식씨가 기타치고 노래도 불러주고 채소도 잘 다듬어주어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
김장로의 고향은 너구마을이고 천권사의 고향은 대구이다. 1996년 결혼하여 곡강에 정착하였다. 아들 김성운,김성민 형제가 있다.
흥해읍 금장리에 살고 있다. 건강했으나 최근에 시력이 약해져서 시각장애 상태에 있다. 아들 이중혁씨와 함께 사는데, 생활의 편리를 위해 곡강교회에서 집을 새로 짓고 나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장장로의 고향은 예천이고 김권사의 고향은 울릉도이다. 1987년 결혼하여 포항에 살면서 1999년 곡강교회에전입했다. 딸 장이슬, 장혜원이 있다.
장장로의 고향은 예천이고 김권사의 고향은 울릉도이다. 1987년 결혼하여 포항에 살면서 1999년 곡강교회에전입했다. 딸 장이슬, 장혜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