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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이미자 권사님

이상희 집사님

김분자권사님

업로드중입니다.나는 1940년 울진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요. 바다가 지척에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요. 우리는 네 남매였고, 나는 셋째 딸이었어요. 막내는 아니었지만, 언니와 함께 살림을 돕고 동생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농사일과 집안일이 겹치면 아이들도 일손이 되어야 했지요. 그 시절은 다들 가난했어요. 고무신 한 켤레 아껴 신으려고 장독대 옆에 벗어두고 맨발로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우리에겐 익숙한 삶이었어요. 그렇다고 항상 힘들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자매들과 강냉이 볶아 먹고, 바닷가에서 조개 줍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겹고 따뜻해요. 학교는 오래 다니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몇 년만 다니다가 일을 거들어야 했지요. 그래도 그때 배운 글 덕분에 지금도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몸에 밴 성실함과 책임감이 지금까지도 저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어요. 유년 시절, 고된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길이 그렇게 천천히 열렸던 것 같아요.

배봉순 할머니

고향은 대신동이고 20살에 곡강으로 한 살 어린 남편에게 시집왔다. 남편은 결혼 당시19살이었다. 자녀는 딸 2명에 아들 3명을 낳았다. 권사님은 자식들이 장성해 어른이되었을 때 가장 기뻤고 자식들이 아팠을 때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혼자 집에 살지만 예전에 한동대 학생들이 자취를 했다. 김병관, 이완, 김아람이 살았는데 참 예쁜 아이들이었다. 다공부를 잘하고 착하고 어른 스러웠다. 원래는 절에 다녔는데 그 학생들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권사님은 심장이 아파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한동안 거동이 불편했다.

믿음으로 이어진 삶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 덕에 신앙을 쭉 지켜왔지. 우리 아버지가 영수였거든. 그때 일제강점기였는데, 주일날 학교에서 나무하러 가라 하니까 아버지가 나무는커녕 절대 가라 하지를 않으시더라고. 그래서 정학도 당하고, 참 어려운 시절이었어. 그래도 신앙이 있으니까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었지. 만주에서도 살았고, 해방 후에 대구로 와서 살면서도 가난했지만, 하나님 믿고 여기까지 온 거야.

김종하 목사

김목사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이며 사모의 고향은 울산이다. 장신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하유계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1998년부터 곡강교회 당회장으로 있다. 1992년에결혼하여 2녀가 있다. 딸 김한슬(24) 대학생이다. 딸 김다슬(22) 대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