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의 나이에도 에너지가 넘치는" 윤명순 권사님. 천안 병천면 매성리라는 깊은 시골 마을, 유관순 열사의 숨결이 닿는 곳에서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녀의 삶은 개인의 신앙을 넘어, 한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는 과정의 산증인이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하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나는 1947년 2월 12일, 포항 기계면 소금실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2월 11일로 올라가 있지만, 실제 생일은 하루 뒤였다. 그 시절엔 그렇게 되는 일이 많았다. 여섯 남매 중 셋째였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면 송피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쑤어 먹던 그 기억이, 이상하게도 살가운 유년으로 남아 있다. 배는 곯았지만 마음까지 허기지진 않았다. 1955년,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1960년 졸업. 중학교를 마친 건 1963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부를 꽤 성실히 했다. 우리 부모님은 교육에 있어서는 결단력이 대단했다. 쌀을 팔고, 송아지를 팔고, 논을 조금씩 늘려가며 자식들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투자자'였고, 어머니는 행동하는 실천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버지가 탈곡한 나락을,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훔쳐 외가에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신 일이다. 빗자루로 자루를 들어올리며, 남편 모르게 자식들 학비를 챙기던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새벽에 나락이 줄어든 걸 본 아버지는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모른 척해준 그 침묵 속에, 두 분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패랭이꽃처럼, 세상 고통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나 황혼에는 더욱 아름다운 결실로 맺어지길 소망합니다. 영덕읍교회 문덕채 집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후련하다." 김광회 안수집사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이렇게 짧고도 깊은 소감을 밝혔다. 1948년생인 그는 충남 행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거의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며 행암교회의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네. 그때가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조용한 초대장이었지. 예배당에 처음 들어선 날, 마음이 참 따뜻했어. 그날 배운 찬송이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남아있네. "고요한 바다로"라는 찬송인데, 그 찬송은 내 삶의 풍랑과 평안을 함께 담고 있었어. 처음엔 가사도 잘 모르고 멜로디만 따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그 찬송의 깊은 뜻을 깨달았지. "큰 풍랑 일어나 나 쉴 곳 없어도 주 예수 함께 하시네" 그 가사 한 구절이 지금도 내 귀에 맴돌아. 인생이라는 게 늘 잔잔한 물결만 있는 게 아니잖아. 살다 보면 큰 풍랑도 만나고, 쉴 곳 없이 헤매는 날도 많아.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찬송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지. 내가 특별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 신앙의 첫 걸음을 어떻게 내디뎠냐고 물으면 꼭 이 찬송부터 이야기하게 된다네. 그 시절 나는 그냥 좋으니까, 예배당 나가고 찬송 부르고 그랬지. 무슨 깊은 신학이나 교리 같은 건 몰랐어. 그저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고, 기도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한 그 공간이 좋았던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은혜였어. 하나님이 내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셨고, 나는 순전히 그 마음에 끌려 갔던 거지. 지금도 종종 그때 불렀던 찬송을 혼잣말처럼 흥얼거릴 때가 있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특히 그래. 인생을 돌아보면, 참 많은 풍랑이 있었고, 또 그만큼의 고요함도 있었지. 그런데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그렇게 내 신앙의 첫 발걸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찬송과 함께 시작되었단다.
칠포리에서 자란 18세 처녀로 봉림불 청년에게 시집왔다. 그해에 6.25가 터졌다. 신혼시절을 온통 피난 다니다가 보냈다. 그 뒤 2남2녀를 낳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하여 부산과 포항으로 나가 살고 있다. 남편이 7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홀로 마을에 살명서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다. 시금치를 수확하고 가공하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손자들 용돈을 주고 싶어서 일을 한다고 한다. 손자녀는 자주 오며 할머니의 건강은 양호하다고 한다. 길가 첫집 남편(63) 부인(59) 부부는 부인에게 병이 발견되어 대구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으므로 면담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