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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강마을위치

곡강마을은 대한민국의 동해안 포항시 흥해읍에 있다. 포항시는 경상북도의 동남쪽에있으며, 영일만을 둘러싼 남북의 해안과 평지와 산맥을 포함하고 있다. 흥해읍은 포항 시가지의 북쪽에 있으며,현재의 포항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에 이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지금도 청동기시대 이래의 많은 유적들과 옛 흥해군의 문화적 자취들을 가지고 있다. 곡강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강 1, 2, 3리로 구분되어있다. 자연마을로는 봉림과 새각단이 곡강1리이고, 동곡을 포함한 너구와 홍곡이 곡강2리이고, 봉림불과 곡강마을이 곡강3리이다. 곡강마을은 곡강2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북위 36도 06분 32초, 동경 129도 24분 24초에 있다. 지도상 위치는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쪽에 있는 흥해읍의 일부이다. 1995년에 한동대학교가 곡강리의 맞은편에 개교하고, 2000년대에 영일만신항과 배후산업단지가 잇달아 개발되면서 곡강리는 교통상으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흥해읍에서 흥해 안들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남송리 서원마을을 지나고 짓때이 고개를넘어서서 칠포까지 늘어선 마을들이 곡강리이다. 이 마을이 곡강리라고 불린 것은 곡강이 지나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며, 곡강은 비학산과 도음산에서 흘러온 물이 동해로 나가는 강의 이름이다. 동해에 도착하기 직전에 낚시봉 언덕에서 직각으로 꺾여 흐르기 때문에 강 이름이 곡강이 되었다.

박병원집사님

업로드중입니다.나는 영덕군 지품면 오천2리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네. 태어난 집도 여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여기지. 어릴 적엔 오천1리 쪽에 큰집이 있어서 형제들하고 같이 살다가, 내가 살림을 차리면서 이쪽으로 내려왔지. 그래서 내 삶의 시작도, 끝도 오천이 될 것 같아. 형제는 일곱 남매였는데, 난 그중 셋째였어. 그 시절엔 형제 많은 집이 흔했지. 형님은 참 똑똑했어, 그 시절에 대학교까지 다녔으니까. 근데 나는... 6학년 2학기 때 학업을 멈췄지. 6.25 전쟁이 터지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우리를 이끄셨거든. 학교 대신 똥지게를 지고, 소 오줌이고 사람 똥이고 모아서 보리밭에 뿌리고, 그게 우리 밥줄이었으니. 할아버지는 참 신실한 분이었지. 산에 올라가 밤마다 하나님께 빈다고 기도하시던 분. 시장에 가셔도 꼭 과일 하나 사 오셔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믿음이 내게도 전해졌어.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 안에 뭔가 든든한 게 있었어. 할아버지 덕에 땅도 조금 사고, 삶의 방향도 조금씩 나아갔지. 나는 학교도 못 마쳤고, 배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이 오천 땅에서 내게 맡기신 게 있었다고 생각해. 농사짓고, 교회 섬기고, 자식들 키우고, 그것으로 내 인생을 채웠지. 지금 돌이켜보면, 참 평범하고도 고마운 삶이었다네. 뭘 더 바라겠나, 나고 자란 마을에서, 믿음 지키며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사랑과 믿음으로 꽃피운 삶의 여정

백합의 꽃말처럼 사랑과 헌신의 삶으로 가족을 위하여 살아온 영덕읍교회 박영자 집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새롭게 빚어진 인생

길가에서 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질갱이 꽃처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며 다시 일어서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게 살아온 영덕읍교회 김연홍 권사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정도선 할머니

친정은 대보 가는 길 대동배 발산 예스리라는 마을이다. 26세에 봉림불의 청년에게시집와서 2남1녀를 낳았다. 남편은 4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혼자 자녀를길러 결혼시켰다. 자녀들은 울산과 포항에 살고 있으며 손자녀들을 낳아 할머니를찾아온다. 시금치 농사를 하면서 농삿일을 덜 하지만 시금치 만지는 일을 하다가 허리가 굽었다고한다. 봉림마을 노인들은 다리가 일자로 곧은데 너구마을과 봉림불 노인들은 다리가 다 구부정하게 휘었다고 한다.

곡강마을의 전설과 민속

천마 저수지의 골짜기에는 팔매돌이라는 큰 바윗덩어리가 7~8개 있다. 옛날 한 장수가 흥해 망창산에서 힘을 기르면서 던진 것이 날아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장수가 한 번은, 자기의 애마가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홍해 망창산에서 활을 쏜 뒤 말을 타고 화살처럼 달려서 평소에 자기가 던져 놓은 팔매돌 부근에 다다랐다. 그러나 화살이 보이지 않자, 벌써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이라고 단정하고 화를 내면서 애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와 언덕 아래에 꽂혔다. 이로 인하여 그 산의 이름을 천마산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화살이 꽂힌 자리에는 명주실 한 타래 깊이의 샘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천마산은 말 머리, 말 잔등, 말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말 머리 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 천마지가 생기면서 말 머리 부분은 호수 북쪽에 있고, 나머지는 호수 남쪽에 있어서 더욱 전설이 실감나게 되었다. 전설에서 샘이 패었다는 부분은 천마지 호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