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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역경 속 피어난 믿음의 꽃

장성진 권사는 영양 일월에서 7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뜻에 따라 흥구리로 시집을 오게 되었으나, 결혼 후 그녀의 삶은 곤궁의 연속이었습니다. 밥 짓기, 물 긷기, 손이 얼어붙도록 찬물에 빨래하기 등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당시 흥구리는 100가구가 넘는 대촌으로, 한 집에 6~7명, 많게는 10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담배, 고추, 벼, 보리, 콩 등 모든 종류의 농사를 인력으로 직접 지으며 자녀 다섯 명(2남 3녀)을 키워야 했기에, 젊은 시절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궁핍과 고된 노동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장을 보기 위해 아기를 업고 보따리를 이고 4km 떨어진 진보까지 걸어 다녀야 할 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고생 담은 책 10권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믿음 여정: 100년 삶의 생생한 간증

성법동에서 태어나 100여 년 가까이 이곳에서 살아온 장두이 권사님은 이 동네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성법교회를 다녔던 권사님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시기를 직접 겪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삶의 터전을 잃고 포항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고향을 떠났다가 해방 이후 19살이 되던 해 다시 성법동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어릴 때는 교회를 다녔지만 포항으로 이사 가면서 잠시 멀어졌던 신앙의 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이어졌습니다. 옛 교회에서는 남자 성도들과 여자 성도들이 각각 다른 공간에 앉았던 기억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계십니다.

서촌에 뿌리내린 믿음

서촌리 한복판에서 오순태 장로님은 다섯 대째 그 땅을 지켜오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주”로 이어지는 삶의 터전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선 믿음과 공동체의 상징이다. 마을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 장로님 가문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농사를 주 업으로 살아온 그의 집안은 농경문화의 흐름과 함께 이 지역을 지켜왔다. 예전에는 마을이 훨씬 컸고, 말(馬)을 기르던 지역이었으며, 자연의 위엄이 깃든 삶이 일상이었다. 이제는 한적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이 땅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신앙을 지켰고, 후손들 또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로님에게 서촌은 단순한 주소가 아닌 인생의 뿌리이며, 믿음의 땅이다.

곡강마을의 전설과 민속

천마 저수지의 골짜기에는 팔매돌이라는 큰 바윗덩어리가 7~8개 있다. 옛날 한 장수가 흥해 망창산에서 힘을 기르면서 던진 것이 날아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장수가 한 번은, 자기의 애마가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홍해 망창산에서 활을 쏜 뒤 말을 타고 화살처럼 달려서 평소에 자기가 던져 놓은 팔매돌 부근에 다다랐다. 그러나 화살이 보이지 않자, 벌써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이라고 단정하고 화를 내면서 애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와 언덕 아래에 꽂혔다. 이로 인하여 그 산의 이름을 천마산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화살이 꽂힌 자리에는 명주실 한 타래 깊이의 샘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천마산은 말 머리, 말 잔등, 말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말 머리 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 천마지가 생기면서 말 머리 부분은 호수 북쪽에 있고, 나머지는 호수 남쪽에 있어서 더욱 전설이 실감나게 되었다. 전설에서 샘이 패었다는 부분은 천마지 호수가 되었다.

강창태장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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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한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