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 저수지의 골짜기에는 팔매돌이라는 큰 바윗덩어리가 7~8개 있다. 옛날 한 장수가 흥해 망창산에서 힘을 기르면서 던진 것이 날아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장수가 한 번은, 자기의 애마가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홍해 망창산에서 활을 쏜 뒤 말을 타고 화살처럼 달려서 평소에 자기가 던져 놓은 팔매돌 부근에 다다랐다. 그러나 화살이 보이지 않자, 벌써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이라고 단정하고 화를 내면서 애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와 언덕 아래에 꽂혔다. 이로 인하여 그 산의 이름을 천마산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화살이 꽂힌 자리에는 명주실 한 타래 깊이의 샘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천마산은 말 머리, 말 잔등, 말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말 머리 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 천마지가 생기면서 말 머리 부분은 호수 북쪽에 있고, 나머지는 호수 남쪽에 있어서 더욱 전설이 실감나게 되었다. 전설에서 샘이 패었다는 부분은 천마지 호수가 되었다.
백합처럼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영덕읍교회 박연락 권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춘라씨는 봉림불 청년이고 판돌씨는 너구마을 처녀일 때 연애를 했다. 연애 중에 군대에 갔고 월남에 맹호부대로 파견되었다가 제대하고 결혼했다. 2남1녀를 낳았고 모두 결혼하여 포항에 나가 살면서 5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쌀농사와 시금치 농사를 지었다. 해수갑문이 설치되어 경제적으로 호전되었다. 해수욕장이 생긴 것은 경제적으로 아무 영향이 없었다. 20년 전부터 시금치 농사를지어 현금수입이 늘어났다. 그러나 10년 전쯤부터는 시금치에 연작의 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같은 땅에 여러 해 동안 같은 작물을 생산하니 땅이 피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수확이 전만 못하다. 계절에 따른 특별한 동네 행사는 없고 정월 보름날 모여서 윷을 놀고 마을 회의를 하는 정도는 하고 있다.
천택씨는 이 마을 토박이이다. 청년 때 부산에 직장 생활하러 갔다가 순임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한 후 포항 연일로돌아와 살고 있는데 10년 전에 곡강에 사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집을 비워 둘 수도 없고 고향생각도 나서 천택씨는 이 마을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집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생활근거는 연일에 두고 있으며 여기서 농사도 조금지으며 오가곤 한다. 2남2녀를 두었으며 다들 결혼하여 나가 살고 있다. 특히 차남이 미국에서 결혼하여 살고 있는데, 공부하러간다더니 거기서 자리를 잡아버렸다고 한다. 한 번 다니러 가고 싶은데. 아들 전화가 와서요즘 미국에 입국하는데 무슨 까다로운 심사를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노인들이 공항에서 고생할까 걱정된다면서 좀 있다가오시라고 했다고 한다.
영일정씨의 입향조는 정병두씨의 7대조였다. 이귀술씨는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2남 1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하여 포항과 영천에 살고 있으며 7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오직 농사만 지었다. 포구가 없으므로 어업은 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재첩이 잡혀서 재첩잡이를 해서 돈을 조금 번 적도 있었다. 그 뒤에는 해수욕장 배후마을로 민박업이 성행했다. 온 마을이 민박 손님을 받아서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속도로가 나면서 민박이 안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