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강마을의 전설과 민속

천마 저수지의 골짜기에는 팔매돌이라는 큰 바윗덩어리가 7~8개 있다. 옛날 한 장수가 흥해 망창산에서 힘을 기르면서 던진 것이 날아와 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 장수가 한 번은, 자기의 애마가 화살보다 빠르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홍해 망창산에서 활을 쏜 뒤 말을 타고 화살처럼 달려서 평소에 자기가 던져 놓은 팔매돌 부근에 다다랐다. 그러나 화살이 보이지 않자, 벌써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이라고 단정하고 화를 내면서 애마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와 언덕 아래에 꽂혔다. 이로 인하여 그 산의 이름을 천마산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화살이 꽂힌 자리에는 명주실 한 타래 깊이의 샘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 천마산은 말 머리, 말 잔등, 말 꼬리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말 머리 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 천마지가 생기면서 말 머리 부분은 호수 북쪽에 있고, 나머지는 호수 남쪽에 있어서 더욱 전설이 실감나게 되었다. 전설에서 샘이 패었다는 부분은 천마지 호수가 되었다.

곡강마을역사2

1957년부터 마을 위에 천마지를 축조하기 시작해서 몇 년에 걸려서 못을 막았고, 들판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을 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봉림호의 끝 봉림불 앞에 해수갑문을설치하여 역류방지시설을 만들고 간석지 바닥을 준설하여 제방을 만들었고, 천마지가완공되자 저습지의 많은 부분이 농지로 바뀌었다. 이어서 1970년대 중반에는 정영규 동장과원연호 동장 및 이등질 새마을지도자를 중심으로 경지정리 사업이 시행되었다. 확장된농지는 지대가 낮고 물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주로 벼농사를 지었다. 이로써 저습지 전체가농지로 전환되고 통일벼가 보급되면서 곡강의 미곡생산이 급증하였고 마을의 생활환경이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이 사업은 시행 기간 동안 동민의 취로를 적극 지원하였기 때문에, 농가수입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당시의 취로대장을 참고하면, 대부분의 동민은 이 사업에 노역으로 참여하고 보수를 받았으며 그것이 당시 생활개선의 기초자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곡강마을역사

곡강마을 자체의 역사는 정리된 적이 없다. 그러나 가까운 흥해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많으므로, 그 중에서 곡강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을 요약하여 곡강의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765년 흥해군 지도이다. 왼쪽에 둥근 성이 흥해읍이며, 두 갈래로 갈라진 강이 곡강이다. 그 아래 만입한 부분에 '봉림호'라고 쓰여 있어서 당시에는 이곳이 호수였음을 보여준다.

곡강마을위치

곡강마을은 대한민국의 동해안 포항시 흥해읍에 있다. 포항시는 경상북도의 동남쪽에있으며, 영일만을 둘러싼 남북의 해안과 평지와 산맥을 포함하고 있다. 흥해읍은 포항 시가지의 북쪽에 있으며,현재의 포항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에 이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지금도 청동기시대 이래의 많은 유적들과 옛 흥해군의 문화적 자취들을 가지고 있다. 곡강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강 1, 2, 3리로 구분되어있다. 자연마을로는 봉림과 새각단이 곡강1리이고, 동곡을 포함한 너구와 홍곡이 곡강2리이고, 봉림불과 곡강마을이 곡강3리이다. 곡강마을은 곡강2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북위 36도 06분 32초, 동경 129도 24분 24초에 있다. 지도상 위치는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쪽에 있는 흥해읍의 일부이다. 1995년에 한동대학교가 곡강리의 맞은편에 개교하고, 2000년대에 영일만신항과 배후산업단지가 잇달아 개발되면서 곡강리는 교통상으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흥해읍에서 흥해 안들을 동쪽으로 가로질러 남송리 서원마을을 지나고 짓때이 고개를넘어서서 칠포까지 늘어선 마을들이 곡강리이다. 이 마을이 곡강리라고 불린 것은 곡강이 지나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며, 곡강은 비학산과 도음산에서 흘러온 물이 동해로 나가는 강의 이름이다. 동해에 도착하기 직전에 낚시봉 언덕에서 직각으로 꺾여 흐르기 때문에 강 이름이 곡강이 되었다.

방신란 할머니

칠포리에서 자란 18세 처녀로 봉림불 청년에게 시집왔다. 그해에 6.25가 터졌다. 신혼시절을 온통 피난 다니다가 보냈다. 그 뒤 2남2녀를 낳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하여 부산과 포항으로 나가 살고 있다. 남편이 7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홀로 마을에 살명서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다. 시금치를 수확하고 가공하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손자들 용돈을 주고 싶어서 일을 한다고 한다. 손자녀는 자주 오며 할머니의 건강은 양호하다고 한다. 길가 첫집 남편(63) 부인(59) 부부는 부인에게 병이 발견되어 대구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으므로 면담을 하지 못했다.

정도선 할머니

친정은 대보 가는 길 대동배 발산 예스리라는 마을이다. 26세에 봉림불의 청년에게시집와서 2남1녀를 낳았다. 남편은 49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 혼자 자녀를길러 결혼시켰다. 자녀들은 울산과 포항에 살고 있으며 손자녀들을 낳아 할머니를찾아온다. 시금치 농사를 하면서 농삿일을 덜 하지만 시금치 만지는 일을 하다가 허리가 굽었다고한다. 봉림마을 노인들은 다리가 일자로 곧은데 너구마을과 봉림불 노인들은 다리가 다 구부정하게 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