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복 할머니

친정은 영덕 회동이었다. 이 마을의 최수덕씨에게 시집와서 2남 4녀를 낳았는데 남편이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들은 모두 포항에 살고 딸들은 포항과 부산에 산다.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것이 희망이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낯선 고장에 풍속이 달라서 많이 곤란했다. 바닷가 생활이 마음에들지 않고 살림도 곤궁하였다. 당시에는 배를 곯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75세 되던 무렵부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각장애 상태에 있다. 가까운 이웃 나들이는 하지만 생활은 불편하다.

정홍연 할머니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란 18세 된 마을 처녀였다. 같은 마을에 살던 26세의 서해섭 청년에게 시집와서 1남 1녀를 낳았다. 남편은 65세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결혼하여 포항으로, 딸은 결혼하여 부산으로 나갔다. 원래 농사짓는 마을에서 컸기 때문에 농사일은 어렵지 않았다. 해수욕장이 만들어지고 1974년 새집을 지어 이사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민박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바쁠 정도로 손님이 많았지만 이제는 민박이 퇴조하여 손님이 전혀 없다. 요사이 귀가 어두워져서 가까이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게다가 연전에 마당에서 넘어져서 허벅지가 골절되어 보행이 불편하다. 그래도 마당과 채전밭은 쉬지 않고 매만져서 말끔하게 해 놓았다.

이귀술 정병두 부부

영일정씨의 입향조는 정병두씨의 7대조였다. 이귀술씨는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2남 1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하여 포항과 영천에 살고 있으며 7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오직 농사만 지었다. 포구가 없으므로 어업은 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재첩이 잡혀서 재첩잡이를 해서 돈을 조금 번 적도 있었다. 그 뒤에는 해수욕장 배후마을로 민박업이 성행했다. 온 마을이 민박 손님을 받아서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속도로가 나면서 민박이 안 되기 시작했다.

정병두 이귀술 부부

영일정씨의 입향조는 정병두씨의 7대조였다. 이귀술씨는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에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2남 1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하여 포항과 영천에 살고 있으며 7명의 손자녀를 낳았다. 처음에는 오직 농사만 지었다. 포구가 없으므로 어업은 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재첩이 잡혀서 재첩잡이를 해서 돈을 조금 번 적도 있었다. 그 뒤에는 해수욕장 배후마을로 민박업이 성행했다. 온 마을이 민박 손님을 받아서 바빴지만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고속도로가 나면서 민박이 안 되기 시작했다.

김선란 최돌식 부부

돌식씨는 마을에서 3남2녀 중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중매로 선란씨를 만났는데, 선란씨 친정은 신흥리였다. 딸 은혜(27)씨 하나를 낳았다. 부모와 자녀가 약간의 장애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하고 아는 사람들이어서 별 불편이나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해 전에 경운기를 운전하다가 자동차에게 충돌 당하여 허리가 아팠는데, 조금 나은 뒤에 경운기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지금도 허리가 여전히 불편하다고 한다.

최돌식 김선란 부부

돌식씨는 마을에서 3남2녀 중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중매로 선란씨를 만났는데, 선란씨 친정은 신흥리였다. 딸 은혜(27)씨 하나를 낳았다. 부모와 자녀가 약간의 장애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하고 아는 사람들이어서 별 불편이나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해 전에 경운기를 운전하다가 자동차에게 충돌당하여 허리가 아팠는데, 조금 나은 뒤에 경운기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고 한다. 지금도 허리가 여전히 불편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