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대 이기화 부부
이기화씨는 목포 출신이다. 목포에서 연애로 남편을 만나 결혼해 딸을 한 명 낳고 살다가 남편 고향인 곡강으로 이사를 왔다. 1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이 늦둥이로 셋째딸과 7살 차이가 난다. 늦게라도 아들을 낳으니 아버지 일도 많이 돕고 기계도 잘 다루어서 든든하다. 한 딸은 양덕 이비인후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기화씨가 손주를 봐준다. 둘째 딸은 학원에서 고등학생들 수학을 가르치며 대학교 4학년인 아들과 함께대구에 있다.
차분남 배두하 부부
차분남 할머니는 우각 맞은편 학마을 동네 댓골 차씨다. 70년도에 이 마을에 사는 7남매 중 맏이인 배두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딸 1명과 아들 2명을 낳았다. 맏이가 딸인데 포항에 있다. 곡강에 시집와 농사를 짓고 시어른을 모시며 시동생을 키우고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우사 앞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을 밤새 길러오고 나무도 직접 해서 밥을 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유부단하고 끊고 맺음이 없어 힘들었다.
배두하 차분남 부부
차분남 할머니는 우각 맞은편 학마을 동네 댓골 차씨다. 70년도에 이 마을에 사는 7남매 중 맏이인 배두하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왔다. 딸 1명과 아들 2명을 낳았다. 맏이가 딸인데 포항에 있다. 곡강에 시집와 농사를 짓고 시어른을 모시며 시동생을 키우고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우사 앞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 물을 밤새 길러오고 나무도 직접 해서 밥을 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우유부단하고 끊고 맺음이 없어 힘들었다.
김옥자 할머니
친정은 달전이고 66년도 23살에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친정은 아버지때부터 과수원을 했다. 지금도 저영천에서 사과밭을 한다. 곡강에시집와서는 매일 시금치 농사를 짓고산에서 고사리 뜯었다. 안춘선 할머니와 친구인데 시집와서 부터 같이 지냈다고 한다. 안춘선 할머니는 김옥자할머니보다 한 살 어리고 여기가 고향 동네라고 한다. 항상 안춘선 할머니가 놀러 와서 함께 계신다. 자녀는 아들 2명에 딸 1명을 낳았다. 자녀들은 다 결혼했다. 작은 아들은 울산 현대에서 일하고 맏이는 흥해에 있고 부동산을 한다. 딸은 국민은행에 있다. 사위는 조선선재회사 일 때문에 서울에 있다. 할머니는 두 외손녀를 10년 동안 봐주었다. 아이가 워낙 착했고 10년을 키우다 보내려니 참 섭섭했다고 한다. 큰외손녀가 공부를 잘해서 올해장관상을 탄다고 한다. 친손자는 큰 아이가 13살로 내년에 중학교 간다.
김성자 씨
신광면에서 태어나 동해면으로 시집을 가서 살다가 여기로 왔다. 친정이 큰집이라 매일 고기반찬을 하고 손님도 많이 와서 좋았는데 커서 보니 매일 상 차리고 제사지내느라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어 힘들었다. 물도 멀리서 이어와야 했는데 물 길어 밥하고 설거지하느라 고생했다. 그 때문에 성자씨는 부잣집이나 맏이에게는 절대로 시집을 안 가겠다며 당시에 좋은 사람들 중신 들어온 걸 마다하고 이 집에 시집을 왔다. 처녀때부터 오빠를 따라 교회에 다녔는데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중신을 해주었다. 남편은 9남매 중 둘째였는데 시어머니가 소아마비로 몸 한쪽을 잘 못 쓰는 분이었다. 시어머니가 장가간 큰형님이랑 살겠다고 했는데 큰형님네 부부가 시어머니를 모시지않겠다고 하여 성자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시동생과 시누이를 돌보고 학교를 보내고 시집 장가를 다 보냈다.
손종난 김돌식 부부
할머니는 용화사 절에서 태어나 못 근처 답다리에서 자랐다. 친아버지 고향은 영천고경인데 답다리로 이사를 와 온 가족이 거기서 살다가 자신이 여기로 시집오고나머지 식구들은 죽천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7남매 중 종손으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자랐다. 부부는 1남 2녀를 두었다. 손종난 할머니는 시집을 일기로 적으면 참 지긋지긋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논농사를 짓고 소를 몰면서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셨고 시동생(남자)이 3명이고 시누부(여자)가 3명이었는데 모두 할머니가 길러서 학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