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씨

우각에서 22살에 곡강으로 시집을 왔다. 딸 2명에 아들을 1명 낳았다.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게 지내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일만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마을에 와서 시금치로 음식을 많이 해먹었다. 시금치를 삶아서 먹고 시금치를 갈아서 수제비로 해 먹고 시금치국도 많이 먹었다. 그런데 국은 들큰해서 별로라고 한다.

황영백 이석분 부부

황영백 장로님은 죽장면 상옥 출신이고 이석분 권사님은 신광면 우각 출신인데 두분은 울산에서 만나 72년도에 결혼했다. 원래 황장로님이 이혼을 하고 전처소생이 있었고 권사님은 어릴 때 사고로 오른손이 불편했는데, 울산에서 동서가 중매를 해서 결혼을 했다. 현재 사는 곳이 외가였는데 결혼해서 인사를 하러 외가에 와서 보니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 여기 와서 약한 교회 섬기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 마을에 이사를 왔다고 한다. 이사 와서 곡강교회를 다니는 동안 교회건물을 두 번 지었다. 처음 왔을 때 교회가 너무 허술하고 교인도 없었고 김용호장로님 가정이 교회를 붙잡고 있었다. 김용호장로님 혼자 교회를 섬길 때 교회가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아주 어려웠다. 마침 부흥회를 하고 새마을바람에 벽돌도 찍고 해서 교회를 지었다. 그 뒤 다시 교회를 지을 때는 논밭을 팔아서 짓기 시작했는데 김종배장로님이 곡강교회로 와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후 차차 한동대 학생들도 오면서 교회가 이만큼 발전하고 식구가 늘었다.

남옥녀 이등질 부부

이등질 회장은 12대조 대에 입향한 이 마을의 토박이이고 부인 옥녀씨는 24세에 혼인하여 들어왔다. 지금까지 2남을 낳아 길렀는데 맏아들은 포항에 나가 살고 작은 아들은 부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앞들이 거의 삼분지 일이나 반가량이 갈밭이거나 늪이었다. 저습지가 바다보다 1.5m 높고 하단에 갑문이 없었으니 작은 해일에도 해를 입었고 봉림 앞까지는 늘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1960년대에도 개간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상주에서 온 사람이 저습지를 간척 해서 농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등질 남옥녀 부부

이등질 회장은 12대조 대에 입향한 이 마을의 토박이이고 부인 옥녀씨는 24세에 혼인하여 들어왔다. 지금까지 2남을 낳아 길렀는데 맏아들은 포항에 나가 살고 작은 아들은 부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 앞들이 거의 삼분지 일이나 반가량이 갈밭이거나 늪이었다. 저습지가 바다보다 1.5m 높고 하단에 갑문이 없었으니 작은 해일에도 해를 입었고 봉림 앞까지는 늘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1960년대에도 개간촉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고, 상주에서 온 사람이 저습지를 간척 해서 농사를 지으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강진희 한증황 부부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

한증황 강진희 부부

증황씨는 포항 죽도동 섬안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진희씨는 서울 은평구에서 중매로 이 마을로 시집 온지 32년차이다. 시어머니를 23년 동안 모셨다. 부부는 아들 둘을 슬하에 두었다. 큰 아들은 성균관대 심리대학원을 올해 졸업예정이고 작은 아들은 히즈빈스에서 일한다. 첫째는 현재 32살, 둘째는 30살이다. 둘째아들은 대학에 가서 몸이 많이 아팠다. 진희씨는 아들이 아파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질환에 대해 알고 싶어서 8년동안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를 했다. 교육청, 해병대 등에서 상담을 16년째 했고 학생상담으로 장관상도 탔다. 현재 부부는 대도동에 있는 성결교회를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