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씨

이 마을 토박이인데 포스코에서 30년 근무하고 마을로 돌아와 복숭아도 기르며 농사를 짓는다. 경호씨는 이 마을에서 살림이 유족한 집에서 자랐다. 마을에 흉년이 들면 경호씨 집에서 일하고 품삯을 받아 보릿고개를 넘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의 친구들은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경호씨는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시내에 친구들이 많았다. 마을 살림이 나아지면서 다들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이분남 권천수 부부

천수씨는 이 마을 토박이이고 분남씨는 신광 상읍에서 시집왔다. 시부모님을 효성으로 모셔서 분남시는 효부상도 받았고 1남 1녀를 낳아서 길렀다. 천수씨 집은 윗대 어른들부터 점잖은 성품으로, 이웃 동네까지 사람들 모두와 좋은 관계로 지냈다. 천수씨 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항상 한복 정장을 하고 멋있게 사셨는데, 지금도 천수씨는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천수씨도 지금은 완전히 백발이고 눈도 조금 침침하며, 분남씨도 몇 년 전에 기관지 혈관이 터져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둘 다 건강하다. 요즘 걱정은 마을이 이주하는 문제이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없는데 나중에 찾아올 고향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한다.

권천수 이분남 부부

천수씨는 이 마을 토박이이고 분남씨는 신광 상읍에서 시집왔다. 시부모님을 효성으로 모셔서 분남시는 효부상도 받았고 1남 1녀를 낳아서 길렀다. 천수씨 집은 윗대 어른들부터 점잖은 성품으로, 이웃 동네까지 사람들 모두와 좋은 관계로 지냈다. 천수씨 아버지는 키가 크시고 항상 한복 정장을 하고 멋있게 사셨는데, 지금도 천수씨는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한다. 천수씨도 지금은 완전히 백발이고 눈도 조금 침침하며, 분남씨도 몇 년 전에 기관지 혈관이 터져서 고생을 했다. 지금은 둘 다 건강하다. 요즘 걱정은 마을이 이주하는 문제이다. 자식들은 다 도시로 나가고 없는데 나중에 찾아올 고향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한다.

오영숙 하원섭 부부

아랫각단 맨 바깥집에 거주하고 있다. 2남 1녀를 낳았으며 큰아들과 딸은 나가서 살고 있고 작은 아들 하정우씨(48)가 마을 입구에서 ‘다솜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오영숙씨는 흥해 용천에서 24세에 시집왔다. 당시에는 집 앞의 들판이 모두 갈대밭이어서 농사를 짓지 못했고, 집 뒤의 비탈에 밭농사를 지었다. 마을에는 거의 30호 가량의 하씨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흩어져버리고 화수회라도 해야 모여서 서로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하원섭 오영숙 부부

아랫각단 맨 바깥집에 거주하고 있다. 2남 1녀를 낳았으며 큰아들과 딸은 나가서 살고 있고 작은 아들 하정우씨(48)가 마을 입구에서 ‘다솜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오영숙씨는 흥해 용천에서 24세에 시집왔다. 당시에는 집 앞의 들판이 모두 갈대밭이어서 농사를 짓지 못했고, 집 뒤의 비탈에 밭농사를 지었다. 마을에는 거의 30호 가량의 하씨들이 살았으나 지금은 모두 흩어져버리고 화수회라도 해야 모여서 서로 소식을 듣는다고 한다.

최태호 정옥분 부부

새각단 한동원룸 앞집이다. 포항 효자동에 살던 옥분씨가 이 마을에 살던 태호씨를 만나 중매반 연애반으로 24세에 결혼하여 지금까지 여기서 살고 있다. 시집와서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시작해서 작년까지 22년을 모셨다. 시어머니 모수학집사님(94)은 지난 4월에 큰아들 집에서 모셔 갔다. 옥분씨는 셋째며느리인데 지금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시어머니를 모셨기 때문에 형제들이 고마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