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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응답과 감사로 채워진 믿음의 발자취

윤석정 집사님의 신앙생활은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서촌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를 다녔으며, 특별한 의미 없이 교회에 출입했다고 회상합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형수의 소개로 순복음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인 20세 전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은혜

배준 장로는 현재 서촌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장로입니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모태 신앙인이라고 회고합니다. 그의 신앙은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졌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서촌교회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장로, 어머니는 권사로서 서촌교회에서 봉사했습니다. 특히, 배준 장로의 가족은 서촌교회에서만 3대가 신앙생활을 이어온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님의 자녀들 또한 서촌교회를 다녔기에 이러한 3대 신앙의 전통이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서촌교회는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배준 장로의 아버님 세대는 교회의 초창기 이후의 다음 세대에 해당한다고 언급되어, 서촌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의 가정이 오랜 시간 함께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 예수에 빠져 살기를 소망하다

서촌교회 이삼영 장로님은 한때 교회를 '무지하게 반대했던' 젊은 혈기를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스물두살,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우연히 교회 문을 넘어서게 된 장로님의 삶은, 그 후 오롯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채워졌습니다. 율법적인 열심에서 진정한 용납의 은혜를 깨닫기까지, 이삼영 장로님의 신앙 여정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성숙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믿음으로 이긴 고난, 은혜로 채워진 삶

장경임 권사의 신앙은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밝혔으며, 특히 할머니의 깊은 믿음이 신앙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셨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릴 적 다니던 서촌교회는 "작은 교회"였고, 현재의 성전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와 함께 자신도 동참하며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 대를 이어 교회를 섬기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오랜 신앙생활은 3분기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서촌에 뿌리내린 믿음

서촌리 한복판에서 오순태 장로님은 다섯 대째 그 땅을 지켜오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주”로 이어지는 삶의 터전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선 믿음과 공동체의 상징이다. 마을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 장로님 가문은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농사를 주 업으로 살아온 그의 집안은 농경문화의 흐름과 함께 이 지역을 지켜왔다. 예전에는 마을이 훨씬 컸고, 말(馬)을 기르던 지역이었으며, 자연의 위엄이 깃든 삶이 일상이었다. 이제는 한적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이 땅을 떠날 생각이 없다.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신앙을 지켰고, 후손들 또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장로님에게 서촌은 단순한 주소가 아닌 인생의 뿌리이며, 믿음의 땅이다.

바람이 되어 돌아보는 길

나는 1947년 2월 12일, 포항 기계면 소금실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2월 11일로 올라가 있지만, 실제 생일은 하루 뒤였다. 그 시절엔 그렇게 되는 일이 많았다. 여섯 남매 중 셋째였고,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그래도 봄이면 송피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쑤어 먹던 그 기억이, 이상하게도 살가운 유년으로 남아 있다. 배는 곯았지만 마음까지 허기지진 않았다. 1955년, 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1960년 졸업. 중학교를 마친 건 1963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공부를 꽤 성실히 했다. 우리 부모님은 교육에 있어서는 결단력이 대단했다. 쌀을 팔고, 송아지를 팔고, 논을 조금씩 늘려가며 자식들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투자자'였고, 어머니는 행동하는 실천가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버지가 탈곡한 나락을,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훔쳐 외가에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신 일이다. 빗자루로 자루를 들어올리며, 남편 모르게 자식들 학비를 챙기던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새벽에 나락이 줄어든 걸 본 아버지는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모른 척해준 그 침묵 속에, 두 분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