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기

인생화원 PICK







김춘희 정재화 부부

재화씨는 이 마을 토박이인데 춘희씨가 하얼빈에서 30세에 시집와서 1남1녀를 낳았다.봉림불에는 재화씨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형제들도 떠났지만 재화씨는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다. 딸은 부산에서 대학에다니고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춘희씨는 대구교육해양수련원에 근무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낯선 곳으로 시집왔지만 남편과 시집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정재화 김춘희 부부

재화씨는 이 마을 토박이인데 춘희씨가 하얼빈에서 30세에 시집와서 1남1녀를 낳았다.봉림불에는 재화씨의 어머니와 친척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형제들도 떠났지만 재화씨는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있다. 딸은 부산에서 대학에다니고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춘희씨는 대구교육해양수련원에 근무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낯선 곳으로 시집왔지만 남편과 시집 가족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

엄주업 씨

마을에 새로 이주해온 새 주민이다. 고향은 울산이며 울산에서 지금까지 살았다. 온산공단에서 20년이 넘게 일했으며 정년으로 퇴직했다. 평소에 산과 강과 바다가 모두 갖추어진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해안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이 마을에서 쉬면서 마을에 호감을 느껴서 정착하려고 알아보았다. 그때 이장님 어머니가 소개해 주셔서 지금 사는 집과 땅을 사게 되었다. 땅을 산 뒤 8년간 마을에 출입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다. 2014년 말일에 퇴직하면서 바로 이주했다. 부인과 두 아들은 울산에 남았다. 지금 가까운 대구교육해양수련원에 격일제 야간근무를 하면서 생활한다. 특별히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낯선 곳에 정착했지만 마을 사람들과 어색하지는 않다.

정명라 씨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독신이다. 형제들은 홍해와 울산 등지에 사는데 자신은 이 마을에서 논농사와 채소농사를 짓고있다. 어릴 때 떨어져서 오른손을 다친 뒤로 지금까지 오른손은 쓰기에 불편하다.

김상복 할머니

친정은 영덕 회동이었다. 이 마을의 최수덕씨에게 시집와서 2남 4녀를 낳았는데 남편이 7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들은 모두 포항에 살고 딸들은 포항과 부산에 산다. 손자녀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오는 것이 희망이다. 처음 시집왔을 때는 낯선 고장에 풍속이 달라서 많이 곤란했다. 바닷가 생활이 마음에들지 않고 살림도 곤궁하였다. 당시에는 배를 곯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75세 되던 무렵부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각장애 상태에 있다. 가까운 이웃 나들이는 하지만 생활은 불편하다.

정홍연 할머니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란 18세 된 마을 처녀였다. 같은 마을에 살던 26세의 서해섭 청년에게 시집와서 1남 1녀를 낳았다. 남편은 65세에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결혼하여 포항으로, 딸은 결혼하여 부산으로 나갔다. 원래 농사짓는 마을에서 컸기 때문에 농사일은 어렵지 않았다. 해수욕장이 만들어지고 1974년 새집을 지어 이사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민박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바쁠 정도로 손님이 많았지만 이제는 민박이 퇴조하여 손님이 전혀 없다. 요사이 귀가 어두워져서 가까이서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게다가 연전에 마당에서 넘어져서 허벅지가 골절되어 보행이 불편하다. 그래도 마당과 채전밭은 쉬지 않고 매만져서 말끔하게 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