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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황분선 윤상수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윤상수 황분선 부부

마을회관 맞은편에 사는 노인회장님 부부이다. 파평윤씨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마을에서 살았다는 윤상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깐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평생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 마을 이장을 맡아 일했으며 임기가 끝난 뒤에 다시 이장을 맡아 임기를 두 번 맡았다. 부인 황분선씨는 신광면 기일리에서 시집와서 2남 2녀를 낳고 기르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90살의 기억

아이고, 우리는 원래 5남매였는데, 지금은 막내랑 막내 여동생, 그리고 나만 남았네. 우리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참 한 많은 세상을 살아왔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겨우 열한 살 때였어. 그때가 일제 시대였지. 그 뒤로 삶이 참 힘들었어. 형제자매들하고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애썼지.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작된 삶의 고난이었지. 아버지 없이 자라는 건 참 힘든 일이었어. 형제자매들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냈지. 어떨 때는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었어.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어. 그 모든 경험이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들었지. 아버지가 계셨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삶을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

70년 오곡리에 핀 이야기

우리 오곡리에 사는디, 이제 거의 칠십 년 되가는군. 여기서 내 살림살이 하며 살아왔지. 젊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농사일에 손도 많이 대보고, 맨날 바쁘게 지냈지. 아이고, 뭐든지 다 해봤다니까. 나무 패는 일부터 시작해서 눈 쌓인 밭에서 일하는 것까지. 그때그때 일이라고는 해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다 내 삶이었네. 그렇게 평범한 날들이 모여서 내 이야기가 되는 거지. 음, 우리 오곡리에서의 내 살림살이, 그거슨 내 인생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

꽃, 기쁨 그리고 나

"사실, 우리 삶에서 자주 우리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 어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요. 특히 지금 이 곳에서 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몰두하곤 해서, 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가끔 중간에 끊기곤 해요. 하지만 이런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순 간들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해요. 사람은 결 국 추억과 기억에 의해 살아가잖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그때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하면서, 때로는 그 감 정이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때도 있어 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이 기회가 정말 소중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