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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화원 PICK







조정자 할머니

고향은 포항 항구동이다. 아버지가 옛날에 직장 다닐 때 전근을 다녀 온 데로 떠돌면서 다녔다. 그러다 21살에 여기로 시집을 왔다. 딸은 못 낳고 아들만 4명 낳았다. 자식들은 포항 시내에도 있고 흥해에도 있고 울산에도 있다. 큰 아들이 금년에 60살이다. 큰 아들 이름이 택호인데 보통 택호엄마라고 불렸다. 요즘은 손주가 용재라서 사람들이 용재할매라 부른다. 옛날에 시어른은 동팥댁이라고 불렀다.

서정해 할머니

곡강 3동에서 태어나 중매로 시집을 와 현재 곡강 2동에서 산다. 남편은 홍해에 옥성 2동 고등학교 있는 곳이 본토다. 결혼해 여기서 함께 살며 농사일을 하고 남의 논을 부치기도 하며 지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다.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첫째는 구미에 있다. 막내는 중국 남경에 엘지에서 일한지 4년 넘었다. 명절에도 만나지 못해 저녁 뉴스에 나오는 중국 소식을 보며 막내아들을 그리워한다. 2살에 6.25 사변이 나서 현대 중공업 부둣가에서 피난을 갔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그 바닷가에서 피난했다고 한다. 즐거울 시간 없이 눈물 반 콧물 반 그리 살았다.

이기분 할머니

할머니는 구룡포 넘어 강구에 대보 호미곶이 고향이다. 53년 전에 곡강으로 시집와 아들 3명을 낳았다. 한 아들은 페인트칠 하고 집 만드는 일을 한다. 한 아들이 늦둥이를 낳아서 막내 손자는 이제 5살이다. 손자들이 매우 귀엽고 예쁘다. 고향에서는 고기를 잡아서 살림이 괜찮았는데 이 마을에 오니 먹고 살기 어려웠다. 밭농사를 어렵게 지어 보리밥을 먹었다. 농사도 지었지만 지금 곡강교회 자리에서 고방간을 했다. 보리 찧고 쌀 찧고 밀도 빻으면서 오는 사람 있으면 술 한 단지를 대접하며 지냈다. 마을에서 아직도 고방간 할매로 통한다.

안영자 김원수 부부

원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시 시내에 나가 살다가 마을로 돌아왔다. 영자씨는 포항 대송 출신이다. 78년도 명절에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원수씨는 부인과 둘만의 추억 같은 걸 못 만든 게 아쉽다. 아들만 2명 낳았다. 아들들은 죽천 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는 학군제 때문에 포항중고등학교로다녔다. 한 아들 이름이 김우재이다. 옛날에 총각인 삼촌이 한 명있었는데 우재를 한방 톡 때려서 울리고 "우재 또 우재~" 하면 서놀리곤 했다. 현재 사는 터에서 예전부터 살았다. 옛날에는 이 집이 기와집이었는데 집이 좁고 겨울에 추워 제사 때 사람이 모이면 불편해서 집을 크게 새로 지었다. 옛날에는 한방에 모여 자기 힘들 정도로 식구가 많았고 집안행사를 하면 몇 촌까지 다 이 집에 모였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부인과 친어머니밖에 없고 집안행사는 밖에 나가서 하니 집이 크게 느껴진다.

김원수 안영자 부부

원수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잠시 시내에 나가 살다가 마을로 돌아왔다. 영자씨는 포항 대송 출신이다. 78년도 명절에 중매로 만나 두 달 만에 결혼했다. 원수씨는 부인과 둘만의 추억 같은 걸 못 만든 게 아쉽다. 아들만 2명 낳았다. 아들들은 죽천 초등학교를 나왔고 중학교는 학군제 때문에 포항중고등학교로다녔다. 한 아들 이름이 김우재이다. 옛날에 총각인 삼촌이 한 명있었는데 우재를 한방 톡 때려서 울리고 "우재 또 우재~" 하면 서놀리곤 했다. 현재 사는 터에서 예전부터 살았다. 옛날에는 이 집이 기와집이었는데 집이 좁고 겨울에 추워 제사 때 사람이 모이면 불편해서 집을 크게 새로 지었다. 옛날에는 한방에 모여 자기 힘들 정도로 식구가 많았고 집안행사를 하면 몇 촌까지 다 이 집에 모였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부인과 친어머니밖에 없고 집안행사는 밖에 나가서 하니 집이 크게 느껴진다.

권도순 할머니

권도순 할머니는 현재 마을 이장님의 어머니다. 청암 본진에 살다가 22살에 여기로 시집왔다. 딸 2명과 아들 3명을 낳았다. 이 동네에서 자식들을 키우며 논농사를 지었다. 6.25사변 때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해수욕장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시집와서 열심히 일하며 자식들 키우셨고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 다른 게 더 있냐고 하신다. 요즘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잘 지낸다.